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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백을 하면: 사랑의 시작? 무심, 무감의 극복과 표현하는 용기!

evol 2012. 11. 19. 21:57

 

 

지치고 고된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나 따뜻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자기와 생각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패기와 열정만으로도 좌충우돌하는 것을 버텨내던 20대를 지나서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이 되면, 삶은 많은 것들이 고착화되어 좀처럼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기 십상이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여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자신을 상대에게 알려야 하고 상대를 알아가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로 다가오고, 비슷한 점에 대한 동질감보다는 다른 점에 대한 어색함과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더 앞서게 되어, 익숙한 자기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남자 인성(김태우)은 소극장을 운영하며 영화를 제작하고, 수입과 배급을 하며,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수입하는 영화는 그럭저럭 유지가 되는 편이긴 한데 만드는 영화에는 취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안목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인지 몰라도 평단은 물론이고 대중에게도 혹평과 외면을 받는다. 오죽하면 어느 영화 전문지의 평론가로부터는 폭탄에나 주는 드문 별점인 별 반개를 받으면서 같은 영화계 사람들에게도 무시를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바쁜 주중의 삶이 마감되는 주말이면 바다가 가깝고 맛집이 많아서 즐겨 찾는 강릉으로 향한다. 인성은 바다를 보고 바닷바람을 쐬며 맛있는 해물에 술을 즐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으며, 친분이 두터운 원길(서범석)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주말을 보내면서 시나리오를 구상하기도 하고, 피로한 심신에 원기를 충전하는 시간을 위해 강릉을 찾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강릉 토박이인 여자 유정(예지원)은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주말이면 서울행 버스에 올라탄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유정은 지금은 병원이 아닌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며 한 주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유정은 친구 집에서 잠자리를 해결해왔는데, 그 친구에게 애인이 생기면서 여관과 찜질방을 전전하게 된다. 휴식을 위해서 주말 서울행을 하던 일에 차질이 생기자 자주 들르던 원길의 카페를 찾아 하소연을 늘어놓다가 인성과 만나게 된다.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를 보지 못하고 대신 본 영화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데 그 영화가 바로 인성이 만든 영화였던 것이다.

 

 

 

민망한 시작으로 인성과 유정은 첫 만남을 가지게 되지만 두 사람 모두 딱히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며 웃으면서 대충 넘어간다. 주말이면 서로 다른 공간으로 엇갈린 발걸음을 하던 두 사람은 원길의 제안으로 불편했던 잠자리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바로 서로의 집을 주말에만 바꿔서 쓰기로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정의 반대로 흐지부지될 것처럼 보였지만 서울에서의 숙소 문제 해결이 만만치 않은 것에 어려움을 겪은 유정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주말이면 서로의 집을 교환하기로 한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을 덧씌워 편안한 연출로 일궈낸 작품이다. 아무리 중간에 지인이 끼인 제안이라고는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거처를 내주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에도 비슷한 설정이 있지만, 거기에서는 일정한 휴가 기간에만 바꾸는 일회적인 설정이었다. 어쨌거나 영화가 차분하게 담아낸 내용물에는 사랑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따뜻하고 낭만적인 소품들이 간결하게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엇갈리고 틀어지며, 각자의 삶의 문제를 아주 조금씩 꺼내 놓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모습이 제법 친숙하게 느껴진다.

 

 

 

로맨틱 코미디의 얼개를 띠고 있지만, 실상 이 영화는 본격적인 사랑의 시작 지점 바로 딱 거기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모르던 사람 사이가 어떻게 해서 아는 사람이 되고, 단순히 아는 사람의 사이가 어떻게 해야 의미 있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30대 중반을 넘긴 사람들에게 사람은 20대처럼 외모보다는 취향과 관심사의 동질감이 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됨을 말하는데, 그 안에는 유재하의 노래와 백석의 시와 오기가미 나오코(荻上直子)의 영화와 향긋한 커피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마음,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달콤한 로맨스 영화에서야 눈빛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 상대가 알아차려 주고, 그래서 휘발유를 끼얹은 것처럼 쉽게 불타오르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들에서 원하는 건 공감이다. 그 노래와 책과 영화에 공감하기에, 공감하고 싶어서, 마음에 따뜻함과 행복감으로 새기고 싶어서 그런 문화생활을 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만나는 것일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을 함께 나누고, 마음을 서로 열면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것, 거기에 필요한 촉매는 바로 표현이잖아!?

 

 

 

마치 실재 인물을 그대로 담은 듯한 느낌으로 연기를 한 두 배우 예지원과 김태우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남성 감독의 한계인지 인성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성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잘 드러나는 반면, 유정과 관련된 부분은 경험하지 못한 선입견과 편견의 찌꺼기가 보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척 진부하고 간편하게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인성 주변의 인물인 조감독 진영(안영미)이나 음악감독 후배 용락(백원길)을 통해서 인성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면, 찌질한 소개팅 남자와 유정이 돌보는 환자를 통해서는 상대적으로 상세한 면이나 시선 자체가 덜 선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참 많이 웃게 된다. 조연들과 카메오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아주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에 큰 흔들림을 주지 않으면서 아주 유쾌하게 웃게 되는 데에는 에피소드의 적당한 현실성이 배어 있는 탓일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순수하고 맑은 눈과 마음을 가진 유정의 모습에서, 외로움과 고독함을 애써 떨쳐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사람에 관한 관심의 시선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따뜻함이 주는 행복감이다. 예지원이 연기한 유정의 모습에는 마치 영화 속에 인용된 백석의 시구처럼 조용히 내리는 눈발 같은 포근하고 촉촉한 느낌이 담겨 있다.

 

무언가 채우고 싶은 갈망, 누군가 그리운 허전감이, 채워지고 위로받길 원한다면, 자신의 발걸음을 움직여 서로의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해야 함을, 마음을 열어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그래야 같은 공간에서의 삶이 만나게 됨을,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The Winter of the Year was Warm

감독: 조성규

 

* 영화에 쓰인 시의 주인공 백석,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다. 이렇게 잊고 있던 것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즐거움, 이 맛에 영화를 본다. 예지원이 부르던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눈물이 그렁그렁 담긴 눈으로 부르던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 라디오에 출연한 영화평론가 목소리 연기는 박해일이 맡았는데, "자기반영,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먹고 노는 게 다잖아."라면서 별 반개의 평점을 준 사람은 '씨네 21'의 이용철이다. 자학은 아니겠고, 감독이 무척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 앞서 박해일의 목소리 출연을 비롯하여 류승수 이상순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특히 감독의 전작인 '맛있는 인생'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류승수는 한류 스타로 나오는데, 그의 허세를 떠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한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