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 사격 선수로서 아시안 게임에 나가 메달까지 땄던 동식(유준상)은 알코올 중독에 의한 손 떨림 증세 때문에 이제는 예전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에 불과하다. 생활을 위해 중학교 사격부의 코치직을 맡은 동식은 제자 채빈(채빈)의 잘못을 혼내면서 손찌검을 하게 되고, 학교에 입김이 센 채빈의 부모 영향력과 부진한 성적 탓에 코치직을 그만둘 위기에 처한다. 한편 동식의 아내인 수원(김지영)은 병원에서 간호인으로 일하며, 더는 소생할 가망성이 없는 노인 환자들을 가족과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종교 재단의 요양원으로 무연고자처럼 속여서 보내버리는 일을 하기도 하면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동식과 수원은 어느 날 성당에서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수원은 상주에게 고인이 좋은 곳에 가셨을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반응에 왠지 모를 죄책감과 머쓱함에 입을 닫게 된다. 그 순간 멀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물체가 있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수원의 눈앞에는 고라니 한 마리가 서 있고, 수원은 알 듯 모를 듯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장면은 영화 전반을 가르는 절망과 고통, 사랑과 헌신, 그리고 구원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동식과 수원은 발을 내딛는 곳마다 푹푹 꺼지는 진흙탕 같은 삶의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동식은 술 문제 때문에 사고를 친 이력도 있고 해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터라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거취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의 여자 이사장의 강요에 못 이겨 술을 마시게 되고 결국 잠자리까지 끌려간다. 그 자리를 나온 동식은 괴로움과 수치심에 술을 더 마시고 귀가하던 중, 여러 아이에게 둘러싸여 있는 채빈을 발견하고 구하려 하지만, 오히려 채빈에게 핀잔만 받고 무리의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다시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려고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채빈을 차로 들이받게 되는데, 이미 만취상태인 동식은 채빈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대로 달아나고 만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 주미(김지영)와 함께 잠든 수원은 밤늦게 찾아온 경찰에게 끌려가는 피묻은 옷의 동식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진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친 남편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수원,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채빈의 아버지를 찾아가보지만,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싸늘한 말만 듣고 발걸음을 돌린다. 결국, 수원은 평상시에 치근덕대던 노인에게 돈을 대가로 섹스를 하게 되고, 멍한 가슴으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에 있어야 할 주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은 주미의 몸에는 누군가가 검은색 펜으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 놓았다. 화들짝 놀란 수원은 주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얼마나 더 그들을 수렁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갈지 속이 타들어 가던 그때, 영화는 조금씩 서서히 절망의 하강을 멈춘다. 그렇지만 영화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또한 숨 가쁘게 진행한다. 수원은 기대를 접었던 채빈의 아버지가 아무런 대가 없이 합의를 해줘서 동식은 풀려나게 되고, 주미가 당한 일이 무엇인가 더 끔찍한 상황은 아니어서 한시름 놓았지만, 주미를 찾아 들어갔던 집에 누워있던 여자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비록 자신의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한 아이의 엄마지만, 다리가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처럼 썩어가며 곧 숨을 거둘 것처럼 겨우 숨만 쉬고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을 차마 모른 척하기가 힘든 것이다.
동식도 그렇고 수원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모습에는 삶의 무게로 힘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돈 때문에 양심을 팔아야 하고, 돈 때문에 수치심을 견뎌야 하고, 살기 위해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비굴한 모습도 보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 제자에게는 빈 총이라도 사람을 겨눠선 안된다던 동식은 물론 취중이었다고 해도 사람을 치고도 도망치고, 딸 주미에게 아픈 사람은 돌봐줘야 하는 거라고 가르치면서도 자신은 병원에서 불법 의약품을 팔기도 하고, 사람을 요양원으로 던져버리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저들과 다른가? 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왜 그들의 삶은 그리도 고되고 힘든 질곡의 연속인지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우리들의 삶을 짓누르는, 동식과 수원의 삶을 옥죄는 고통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모순의 바닥에는 어떠한 것들이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모순은 사람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영화는 한없이 추락하는 구덩이 속의 절망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루하다고 할지라도 그곳에 희망과 구원의 한 줄기 빛이 분명히 있음을, 있어야 함을, 있도록 만들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고 느끼게끔 한다. 영화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 메시지가 일면 종교적인 색을 띠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영화 안에서 거부감 없이 용해되어 있다.
사뭇 상징적인 표현과 축약된 이야기의 구조가 다소 이음새의 매끄러움과 집중도의 저하를 가져오는 단점이 보이기도 한다. 상영시간을 조금 단축해서 함축된 편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역효과가 아닌가 생각되면서도, 인과관계가 명확한 일들로만 이 세상의 일들이 일어나거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고 보니, 감독의 의도가 그런 내용을 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결말, 동식과 수원이 마주 보는 모습에서 그들의 오묘한 표정의 변화가 이상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어떻게든 놓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는 다짐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통과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은 결국 고되고 자괴감이 들어도 놓아버리지 않은 사랑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확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삶에서 구원의 손이 내밀어 질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이었다. 우리 눈앞에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곁을 스쳐 가고, 우리를 대신해서 쓰러지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는 존재, 우리일 수밖에 없다!
Touch
감독: 민병훈
* 배우는 감독의 연출에 의해서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수원 역의 김지영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다. 김지영이라는 배우가 그토록 맑은 눈망울과 관능적이라고까지 할 만큼 매력적인 면이 있었는지, 고통과 슬픔, 멍함과 분노의 표정을 그렇게 표현하던 배우였는지 놀랄만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김지영이라는 배우를 앞으로도 몹시 기대한다.
** 교차 상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던 제작사 민병훈 필름이 스스로 종영을 선언했다. 스크린 쿼터제 때 시위하던 영화인들은 지금 모두 뭐하는 건데? 한 해에 천만 관객이 든 영화가 몇 편인가에만 관심 있나? 제발 다양성 좀 존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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