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사별한 후에 홀로 쓸쓸히 지루하고 무료한 삶을 이어가는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 Richard Jenkins)은 늘 굳은 표정과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20년째 같은 과목을 강의하는 그는 과제물을 늦게 제출한 제자의 사정을 들어보려는 생각도 없이 단호하게 돌려세우는 앞뒤 꽉 막힌 성격의 소유자다. 게다가 강의를 위한 강의 계획서의 연도만 고쳐서 그대로 쓰려는 나태한 교수이면서, 다른 사람의 논문에 이름만 빌려주고 책을 내기도 하지만 연구에는 관심도 열정도 없는 사람이다.
딱히 무슨 취미도 없는 그는 고작해야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마시는 정도인데, 그가 유일하게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것은 피아노 연주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덕에 집에 피아노가 있는데, 집으로 사람을 불러서 개인지도를 받긴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좀처럼 가르치는 사람의 말에 따르지 못하는 상태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레슨을 그만두자며 사람을 바꾸기 일쑤인 옹고집을 부리다 보니, 교습을 해주는 사람이 몇 명씩 바뀌어도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발전이 없는 상태다.
그렇게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남의 사정에 아량도 베풀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부탁도 거절하며 살아가는 그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삶에는 더더욱 관심조차 없는 그의 삶은 외롭고 단조로우며 건조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학회에 참석하러 뉴욕에 가게 되어 뉴욕에 있는 자기 소유의 아파트에 들어가는데, 누구인지도 모를 두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불법 이민자인 시리아 출신의 타렉(하즈 슬레이만, Haaz Sleiman)과 세네갈 출신의 자이납(다나이 구리라, Danai Gurira)인데, 아파트가 오래 비어 있는 상태이다 보니 아마도 부동산업에 관련한 사람으로부터 거처로 편법적인 소개를 받은 모양이다.
월터가 아파트의 실소유자임을 알게 된 타렉과 자이납은 사과를 하고 밤인데도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서 나가는데, 웬일인지 그들을 바라보는 월터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이틀 정도 월터의 아파트에서 머물 수 있게 된다. 월터와 자이납은 연인 사이인데, 월터는 젬베라는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자로 식당이나 카페 등지에서 연주를 하며 돈을 벌고 있고, 자이납은 장신구를 직접 만들어서 팔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분이 불법 체류자이다 보니 늘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다 보니 특히 자이납은 인상도 그다지 푸근해 보이지 않는 월터네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이 못마땅하고 불편하다.
타렉과 자이납이 쉽사리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서 세 사람의 동거는 계속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월터는 타렉의 젬베를 두드려보다가 그 모습을 타렉에게 보이게 된다. 붙임성이 좋은 타렉은 월터를 젬베 앞에 앉히고 그에게 젬베를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젬베에게 관심이 많아진 월터는 젬베 연주를 땀이 나고 숨이 가쁘도록 하면서 점차 타렉과 자이납에 대한 경계심도 낮아지게 되고, 그들의 삶에 조금씩 관심을 쌓아가다가 마침내 타렉에 이끌려 공원에서 다른 젬베 연주자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하기에 다다른다.
젬베 덕분에 삶의 활력을 찾게 되고 삶의 변화가 깃들던 월터는 타렉이 경찰의 단속에 걸려 불법 체류자 수용소에 갇히는 불상사를 당하게 되자, 자비로 변호사를 선임하며 그를 빼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력한다. 그런 와중에 며칠째 소식이 없는 아들 타렉의 안위가 걱정된 타렉의 어머니 모나(히암 압바스, Hiam Abbass)가 월터에게 찾아오고 월터는 모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쏟게 된다. 월터의 삶은 그렇게 낯선 이방인 방문자인 타렉과 자이납, 그리고 모나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영화는 음악과 삶에 관한 영화이자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소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세상과 담을 쌓다시피 하며 살아가던 월터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젬베라는 타악기의 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그 새로운 음악과의 만남으로 월터의 삶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음악이 사람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월터의 삶을 변화로 이끈 울림의 근원에는 자신과 타인과의 조우로부터 이어진 관계가 '우리'로서 발전하며, 그 음악을 서로 함께 공유하고 나눈 모습이 있을 것이다.
월터가 젬베를 배워나가며 보여준 모습에는 타렉의 삶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다.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월터는 곧 새로운 사람을 알아나가는 것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음악을 매개로 해서 친해지면서 단순히 음악뿐만이 아닌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어느덧 낯선 방문객은 친구가 되고 가족과도 같은 관계로 변화 발전하게 됨을 보게 된다.
공기를 울리던 소리는 결국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진동으로 다가가고 그의 마음마저 열게 한 것이다.
영화는 타렉을 구하려는 월터의 모습과 월터와 모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매우 간결하면서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일면 극적인 고조의 부분에서 감정을 아주 무겁게 실을 수도 있는 측면이 있는데도 그 과정을 차분하게 다루면서도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놓치지 않은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도시 뉴욕, 그곳의 공원에서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악기를 연주하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이 바로 미국이 그토록 소중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자유'의 모습이라고 봤을 때, 타렉이 수감된 수용소의 접견장 대기실 벽에 붙어 있던 '미국의 힘은 이민자들로부터!'라는 포스터를 무색하게 하는 수용소의 정책은 스스로 자기 기만적인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비판적인 시선은 타렉을 강제 추방한 수용소의 행태에 분개한 월터의 일갈로 반영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시종일관 표정과 목소리에 변화가 거의 없던 월터의 분노에 찬 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커다란 울림이 되어 이어진다. 다시 혼자가 된 월터가 만들어내는 젬베 소리는 지하철이 내는 소음에 비해 턱없이 작지만, 그 소음을 비집고 사람들의 가슴에 '나'가 아닌 '우리'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둔중한 파동으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The Visitor
감독: 토마스 맥카시(Thomas McCarthy)
* 타렉이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을 월터에게 소개하며 건네주는 음반이 있는데 바로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프로 비트(Afro Beat) 창시자인 펠라 쿠티(Fela Kuti)가 그 주인공이다.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데 매우 강렬하고 새로운 음악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가웠다.
** 모나가 공항에서 월터에게 아랍어로 건네던 마지막 인사(하비비?! 였나?),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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