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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무지한 사람들에게 던져진 잔인하고 끔찍한 미끼

evol 2012. 11. 6. 23:37

 

 

영화가 시작되면 공항 수하물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고, 그 위로 두 개의 가방이 화면을 채운다. 그 가방들은 한국 아이를 입양하러 미국에서 온 스티브(얼 잭슨, Earl Jackson)와 그의 딸 바비(캣 테보, Cat Tebo)의 것이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경상북도 포항의 구룡포 바닷가, 그곳에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빠 이망우(조용석)와 함께 살아가는 순영(김새론)과 순자(김아론) 자매가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는데 그는 두 자매의 작은 아빠 이망택(이천희)이다.

 

이망택은 표면적으로 민박집을 운영하며 세 사람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세 사람의 부양을 위해서 살고 있지는 않다. 초등학교 5학년인 순영이 살림을 거의 도맡아 하고, 허약한 동생을 돌보며,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밥상도 일일이 챙기는 데다가, 수업시간에도 쉬지 않고 휴대폰 고리를 만들어 바닷가와 식당 등지를 다니며 팔아서 가난한 살림을 보태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작은 아빠라는 작자가 툭하면 어린 조카들에게 욕설을 지껄이고 폭언을 퍼부으며 못살게 굴기 일쑤인 집안이다.

 

 

 

스티브와 바비 부녀는 바로 망택이 순영을 입양시키기 위해서 데려온 사람들이다. 입양의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하고 순영을 미국으로 보내려는 망택의 계획은, 비록 지적 장애를 앓고 있긴 하지만 딸의 입양을 원하지 않는 망우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독하게 마음먹은 망택 앞에서 그의 뜻이 통할 리가 없다. 가난한 살림에 어떻게 두 딸을 모두 키우며 살겠느냐고 설득을 하기도 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의 계획을 진행하려는 망택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입양 대상자인 순영은 절대로 미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툭하면 코피를 흘리고 몸살에 시달리는 허약 체질의 순자가 미국에 가겠다고 조르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집안 딸로서, 그리고 철없는 어린 동생의 언니로서, 마치 조금은 오래된 '인간 극장'에라도 나올 법한 착하디 착한 모습의 순영과 달리, 순자는 허구한 날 바비 인형에 둘러싸여서 나름의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하며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 있다. 순자의 그 꿈은 단순히 어린 아이가 가질 만한 그런 소박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병신 아빠'와 살아가는 가난한 환경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그곳을 떠나 미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화려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퍽 구체적인 바람이다. 그런 순자 앞에 미국에서 날아온 스티브와 바비의 존재는 자신을 찌든 삶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사람들로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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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순영에게 자기가 대신 미국에 가겠다고, 너는 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던 순자는 망택에게 자기가 꼭 미국에 가고 싶다고 조르고 떼를 쓰는데, 망택은 너는 몸이 허약하고 아파서 안 된다면서 건강을 이유로 거절한다. 한편 스티브는 바비가 순영과 자꾸 어울려서 놀면서 가까워지려는 기색이 보이자, 순영과는 친해지지 말라며 간단한 점심 자리도 못하게 말린다. 딸로서 입양하려는 순영에게 딱딱하게 굴고 눈길도 제대로 건네지 않는 스티브의 모습과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듯한 망택의 모습에서 뭔가 불길함이 느껴진다.

 

극장가에 배포된 홍보 전단을 통해서 이미 많이 노출된 부분이라서 딱히 영화의 감상을 쓰면서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을 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충격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했다느니, '바비가 아빠의 음모를 알고 심한 충격을 받는다'느니 하는 부분이 나와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눈치 빠른 관객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의 흐름을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딱히 그 숨겨진 이야기가 영화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감춰진 이야기는 바로 장기 이식, 그것도 하나뿐인 심장을 이식받기 위해서 미국인 스티브가 한국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입양을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직설적이다 못해 해괴하다고까지 느껴질 제목과 내용으로 '악명'을 쌓아가던 이상우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파격적으로 다뤄오던 파편화되고, 붕괴되고,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와 내용의 영화다. 수위 높은 성적 표현과 거세게 난무하던 폭력적 표현이 거의 사라지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 가닥으로 줄곧 진행해가는 비교적 단선화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지만, 인물에 대한 단조로운 설정과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표현들은 여전하다.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단점은 다소 빈약해 보이는 구성의 개연성 부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티브는 둘째 딸의 새로운 심장을 구하러 떠난 길에 왜 큰딸 바비를 데리고 왔는가 하는 점과, 스티브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 수준도 상식 이하로 보이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바닷물에 콜레라균이 떠다닌다느니 하는 건 지나친 부분인 것 같고, 백인 소녀 바비가 바닷가에 나타났다고 우리나라 사내애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만져보려고 하는 상황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어딘가 확실히 영화에 보이는 공간과 시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과는 꽤 동떨어진 면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과 시간상으로 멀게 느껴지는 점이 이 영화가 표방한 '잔혹 동화'의 구상에는 부합하게 다가온다. 해외로 영아를 입양시키는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듯한 끔찍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에는 단순하게 해외로의 입양과 비인간적인 장기 매매라는 이야기 외에도, 어린 순자의 모습과 혈육까지 팔아먹는 망택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무서움을 보게 된다.

 

아역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이미 그 틀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 김새론의 연기력이지만, 순영이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 탓인지 발군의 연기력을 펼칠 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고, 김새론의 친동생인 김아론의 모습은 언니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 주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쉬운 점은 이천희의 모습인데, 인면수심의 파렴치한으로서의 모습과 아주 조금씩 틈을 비집고 나오는 양심의 갈등을 겪는 모습이, 영화의 전체 흐름에 맞게 자연스럽게 녹아 있지는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으로 향하는 순자의 모습이 보이는 영화의 끄트머리 부분에서 공항의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가 다시 등장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그랬듯이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그곳의 모습은 핑크색의 바비인형이 그려진 가방을 비추고 있는데, 거기에는 어린아이들의 동심이나 꿈이 담겨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잔혹한 이기심과 부질없는 허영심이 가득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Barbie

감독: 이상우

 

* 영화에서 가장 평화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망우와 순영과 순자 세 가족이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상우 감독의 전작인 '엄마는 창녀다'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나왔는데, 그때보다는 훨씬 더 감정적으로 풍부하게 그려진 장면이다.

 

** 이번에도 이상우 감독은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 정말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장면에 나오는데, 어쩌자고 자꾸 그렇게 앞뒤 못 가리는 변태 성욕자로 나오는지 좀 걱정스럽다. 이야기를 나눠 본 이상우 감독은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