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발휘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대의 배경을 벗어난 어떤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것은 아주 오래되었다. 일반적으로 SF 장르라고 부르는 그런 종류의 영화는 그렇게 공상이라는 부분과 과학이라는 부분을 결합한 공상과학 영화로 불린다. 현재에 실현 불가능한 설정의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그 안에서는 자기 완결적인 과학적 일관성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놀랄만한 설정은 매우 호기심이 쏠리기에 부족하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설정을 뒷받침할만한 구성이 무척 부실하다는 점이다. 영화는 먼 미래인지 혹은 반대로 아주 오래된 옛날인지 모를 때의 이야기를 해주듯이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두 개의 행성이 아주 가까이 맞닿은 채로 공존하는데, 두 행성은 각각 다른 방향의 중력 영향을 받고 있고, 그렇기에 두 행성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접촉 불가능한 상황이며, 오직 트랜스마이어라는 거대 기업이 두 행성의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를 운영하며 그곳에서만 두 행성의 사람들이 일을 함께하며 대화와 소통을 할 수 있다.
두 개의 행성이 각기 다른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발상이야 그렇다고 쳐도, 그렇기에 각각의 행성에서 생성된 물체는 상대 행성에 옮겨지게 되면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타버린다는 점은 그 자체로 설정 자체를 굳건히 뒷받침하는 재료로 쓰이지 못한다. 그 행성은 자전도 공전도 없는 행성인가? 태양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두 행성을 잇고 있는 공간이 어떻게 24시간 일정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상대 행성으로 건너간 사람은 어떻게 피를 순환시키고 호흡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러한 의문들은 과학적인 토대와 무관한 상상력의 결과물인 두 행성의 공존을 인정한다고 해도 일관성이 박약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곳에는 두 세계가 자연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맞닿아 있는 높은 산자락이 있는데, 그곳은 상대적으로 두 행성 간에 중력의 영향력이 가장 약한 부분이기도 해서 두 행성의 사람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밧줄로 몸을 묶어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만한 곳으로 그려져 있다. 바로 그곳에서 영화의 두 주인공인 아담(짐 스터게스, Jim Sturgess)과 에덴(커스틴 던스트, Kirsten Dunst)이 소년과 소녀 시절에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10년 가까운 시간을 만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설정을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SF 장르 영화로서 굉장히 흥미로운 발상과 설정을 끌어왔으면서도 그것을 토대로 고작 '로미오와 줄리엣' 느낌의 연애담을 담고 있다는 게 장르 영화의 팬으로서 참 아쉽다. 모든 이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상부 세계와 상부 세계의 쓰레기 배출구 같은 하부 세계라는 영화의 설정도 아담과 에덴의 사랑 이야기를 빛내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으며, 두 세계의 갈등과 모순이나 충돌과 분란 등은 거의 다뤄지고 있지 않다.
하여간 아담과 에덴은 만남을 지속하다가 두 세계의 접촉을 금지하며 감시하는 국경수비대에 발각되어 에덴이 머리를 다치게 되고 기억상실증(아! 이 무슨!)에 걸리게 되면서 서로 한동안 만나지 못하게 되는데, 어느 날 TV에 나온 에덴의 모습을 본 아담이 다시 에덴을 만나기 위해서 에덴이 일하는 트랜스마이어로 입사한다. 아니, 총까지 쏘아대는 걸 보면 접촉이 발각되는 즉시 최소한 징역형은 물론이고 종신형에라도 처해서 교도소라도 보낼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딱히 무슨 형벌을 받지도 않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담이 트랜스마이어사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두 세계 중력의 영향을 거스르고 공존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혁명적인 신물질 연구 때문이다. 아담이 그 연구를 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은 죽은 이모인데, 심지어 이모는 자기가 에덴을 만나는 탓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아담은 상부 행성에 대한 적대감도 별로 없고 오로지 에덴만을 생각한다는 점도 이 영화가 설득력이 별로 없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이모가 음식에 넣어 주던 분홍색 벌꿀 성분이 아담의 연구를 가능케 한 비밀 소재인데, 아담이 그 연구를 하는 목적 또한 가볍기 짝이 없는 노인의 피부를 젊게 재생하고 되돌리는 것이라서 아담이 참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참 불편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환상적인 두 세계의 모습이 일면 아름답게 보이기는 했어도, 두 쪽이 거꾸로 붙어 있는 공간의 사람들을 보는 것이 그다지 익숙해지질 않았고, 영화에 담긴 여러 환상적인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걸 보면서,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났다. 애초부터 영화의 설정과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와 이야기의 구성들이 오로지 아담과 에덴의 사랑 이야기를 위해 쓰이다보니 영화가 기술에는 집중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빈약하게 된 것 같다.
거의 식민지처럼 지배당하는 처지에 놓인 하부 세계의 사람들의 삶과 상부 세계의 사람들의 삶은 매우 상반되어 있다. 감독의 상상력이 영화 안에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발휘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트랜스마이어라는 회사가 사실상 두 세계를 가르며 권력을 휘두르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과 음울하고 가난한 하부 세상의 사람들의 삶이 대비되면서 아담과 에덴의 사랑 이야기에 충분히 더해지고 섞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가 그다지 흡인력이 없다 보니, 두 배우의 연기도 그다지 주목할 부분이 없어 보인다.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 안타깝게 느껴지기는 해도, 영화는 두 사람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조차 두 사람의 내면을 담기보다는 화려한 영상에 집중하고 있어서 심드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SF 장르의 기술적 표현을 오로지 그 기술의 표현력 자제의 과시를 위해 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이야기의 짜임새나 영화의 섬세함은 허술해지고, 눈이 피곤한 영상으로 그 자리를 대신 채워넣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SF 장르 영화가 담은 이야기가 딱히 환상적인 느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장르 영화로서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두 사람이 빚어낸 사랑의 결과로 세상이 변할 만큼 세상의 모순이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면 차라리 좋긴 하겠지만.
Upside Down
감독: 후안 디에고 솔라나스(Juan Diego Solanas)
* 상부 세계로 간 아담이 화장실서 소변을 보는 장면, 그 순간 든 생각은 몸 안의 체액이 그렇게 영향을 받는데, 상대 세계에 건너가서 숨은 어떻게 쉬고, 음식은 어떻게 먹으며, 피는 어떻게 흐르게 되는지 바로 물음표가 생겨버렸다.
** 영화를 본 후에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는데, 흔히 말하는 '낚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뭐만 하면 죄다 '시작된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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