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 않거나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짐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 경험의 양과 질적인 차이는 천차만별일 수 있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생에서 완전히 배제한 채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사랑으로 기뻐하던 날들이 사랑 때문에 슬픈 기억으로 정리되어도 다시금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따뜻하고 포근하게 자리 잡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는 걸 거다.
1998년, 미국 뉴욕에 살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에릭(투레 린드하르트, Thure Lindhardt), 끊이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찾는다. 그것이 일회적인 섹스를 위한 자리를 위해서든,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만남을 위해서든 중요한 건 지금 온몸을 휘감는 외로움과 욕망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다. 물론, 하룻밤을 위한 만남 후에 밀려드는 허탈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될 때면, 좀처럼 그 부질없는 시간의 반복과 의미 없는 만남의 거듭됨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더욱 거세게 밀려들지만 말이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전화를 통해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던 에릭은 폴(재커리 부스, Zachary Booth)을 만나게 되는데, 변호사인 폴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이 영화는 동성애자인 에릭과 폴의 만남으로부터 빚어지는 열정과 질투, 다툼과 화해, 갈등과 충돌 등을 다룬 사랑 이야기다. 물론,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동성애자이다 보니 퀴어 장르 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기에, 보통의 멜로 드라마라고 보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동안 커밍아웃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던 폴은 여자 친구가 있는 터라 처음에는 에릭과의 관계가 노출되는 것을 꺼렸지만,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의 감정이 깊어지던 두 사람은 결국 동거하기에 이르게 되고, 그즈음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에릭과 폴은 매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물론, 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불타는 질투심에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촉매제에 불과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돈독해져 간다.
그렇지만 그들의 관계를 심각하게 뒤흔드는 시련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생각하지 않았던 폴의 약물 사용이 점점 탐닉의 수준에 이르러 중독 단계에 다다르게 되면서, 며칠씩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는 지경에 빠지고 만다. 거듭되는 폴의 그러한 모습에 에릭은 넌더리를 칠만도 한데, 그 모습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어떻게든 회복시키려고 애쓰지만, 결국 폴이 치료 시설에 들어가고 나옴을 반복하면서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떠밀려 간다.
10년의 세월을 거치는 폴에 대한 에릭의 사랑은 '그렇기 때문에'로 표현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열정을 두 사람의 관계 안에 가두지 못하게 되기까지를 담은 과정에는, 폴의 방만한 태도와 거듭되는 잘못을 인내하며 기다려준 에릭의 사랑이, 마치 장작불이 꺼지는 과정처럼 조금씩 사그라지고 지쳐가는 에릭의 모습과 더불어, 두 사람이 함께 지내던 화사한 공간이 서늘한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변해가는 모습과 함께 그려진다.
이 영화는 퀴어 영화이자 멜로 영화로서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모두 적절히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소재적으로는 동성애자의 이야기지만 여타의 퀴어 영화가 안고 있는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 등 사회적인 이슈에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이 다름 아닌 피차간의 문제라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졌다는 점이다.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을 거듭하는 폴, 이제 마음속에서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에릭, 두 사람의 모습에는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해서 저절로 생명력을 보장받는 관계도 아니고, 아무런 노력 없이 유행가 가사처럼 영원히 지속하기에도 무척 어려운 것이라는 사랑의 어떤 속성이 다소 거칠지만, 매우 밀도 높게 표현되어 있다. 거기에는 달콤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시작으로부터 씁쓸하고 불안하고 아픈 끝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그렇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이제, 흉터로 남고 지난 세월의 더께가 잔뜩 얹힌 추억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Keep the Lights on
감독: 아이라 잭스(Ira Sachs)
* 차마 놓지 못하던 에릭의 손이 폴에게는 계속 주어지던 소중한 변화로의 기회였는데, 폴은 스스로 버거운 짐이라고 생각했을까? 에릭 앞에서 보여주는 폴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결국, 사랑은 자기의 모습대로 빚어지는 것 같다.
** 10년을 거치며 내내 폴이 들고 다니던 천 가방, 폴은 왜 그 가방만 들고 다닌 건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만 그런가 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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