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각해봐. 너희는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이 우주 어디에도 니들처럼 같은 종족을 학대하고 그걸 즐기는 생물은 없어!"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걸작',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 등의 평가를 받으며 입소문이 난 바로 그 영화를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또다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 어이없는 코믹함, 하드 고어에 가까운 잔혹함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 그리고 목이 메는 안타까움과 안이하게 살고 있는 나의 양심을 찌르는 섬뜩함까지 안겨준 영화였다. 포스터와 마케팅이 영화를 망쳤다는 평이 많은데, 마케팅은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포스터는 정말 재앙이다. 영화가 나왔을 때 포스터를 보고 정말 또 하나의 유치찬란한 코미디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장르적으로 이 영화는 SF, 코미디, 스릴러, 호러, 드라마 등의 요소가 환상적으로 조합되어 버무려졌고, 내용적으로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서 사회비판과 인류에 대한 서사적인 곳까지 다다른다. 차마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운 영화다.
내가 아는 신하균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최고였다. 살덩이와 뼈에 새긴 한과 분노를 품은 병구의 모습과 "엄마, 이제 엄마한테 갈 수 있어."라고 말하던 장면에서의 그 피눈물을 흘리는 병구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마치 나의 기억처럼 여겨진다. 백윤식이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그 비주얼, 정말 제대로 충격이었다. 아마도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한, 순이 역으로 나온 황정민(남자 배우 황정민과 동명이인)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날씬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건 왜일까?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무게감을 덜어냈고, 엉뚱하고 유치하게 풀어냈다. 아마도 감독 자신이 각본을 쓰면서 애초부터 내용과 형식에 대한 설정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눈치채겠지만, 영화 안에는 패러디가 여럿 장치되어 있다. 패러디이면서 동시에 오마주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잘 녹아 있는지 참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가 확연하게 들어오는데 그 인용과 차용이 그다지 껄끄럽지 않게 이뤄졌고, 다소 키치적이긴 하지만 그 역시 의도된 계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감독이 개입한 장면들인데 들뜨지 않고 잘 스며든 장면이었다.
"알아? 다 안다고? 그래, 다 알 수 있겠지, 뻔한 얘기니까.
근데 다 알면서 어딨었는데? 내가 미쳐갈 때 어딨었어?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 거야! 니들이 다 죽였어!!"
병구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노동자 계급의 단면일 수 있다. 광산 노동자인 아버지의 죽음, 군대와 다름없는 학교생활, 노동 쟁의 과정 중 연인의 죽음, 산업 재해로 말미암은 어머니의 병환, 폭력의 악순환을 겪게 되면서 얻게 되는 교도소에서의 복역 생활. 그러면서 병구는 어쩌면 실상 미친놈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겪은 모든 아픔과 재앙이 사실은 외계인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미치는 것에 무슨 한계와 합당한 과정이 있겠느냐만......
나는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어우러지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다. 그 내용이 개인적인 관계이든, 사회적인 관계이든 마찬가지이다. 본질과 현상을 교묘히 희석화하는 그런 원칙 없는 대동주의는 늘 떠들어대는 캠페인에 불과하다. 자본이 아무리 인간적인척해 봤자 자기본질의 요소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듯이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선 긋기'를 제대로 해야만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자기가 자기 손자에게는 제아무리 너그러운 할아버지래 봤자 권력과 부의 축적을 위한 야욕에 사로잡혀 수천의 사람을 죽인 놈이라면 그놈은 죽을 때까지 발등을 이태리타올로 박박 긁고 물파스를 뿌려서라도 고통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거다.
슬프고, 아팠고, 또 슬프고 아팠다. 엔딩 크레딧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영화가 정리되는 그런 대단한 하나의 작품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기억하는 한, 한국 영화 중에 최고의 엔딩 크레딧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의 감동과 기억을 담아 다시 한번 묵직하게 가슴을 쳤다. 다시 한번 이 영화의 포스터와 마케팅을 담당한 사람에게 '뻐큐'를 날리고 싶다.
영화를 좀 본다는 사람이라면, 좋은 영화를 찾는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감동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니 그냥 영화를 즐기는 보통의 사람에게도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다. 영화 속 지구는 병구가 지키겠지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켜야 하니까!
Save the Green Planet!
감독: 장준환
* '남영동 1985'와 '26년'의 개봉을 앞둔 시점, 이 영화가 문득 생각났다. 비운의 걸작, 다시 봐도 참 멋진 영화다.
** 물파스와 이태리타올,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곤 했다. 슬며시 웃음 지으며.
- 에필로그 : 지구를 지켜라 OST -
'영화。kⓘ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고백을 하면: 사랑의 시작? 무심, 무감의 극복과 표현하는 용기! (0) | 2012.11.19 |
|---|---|
| 터치: 그들에게 내민 손이 곧 네게 내밀어 질지니! (0) | 2012.11.16 |
| 라잇 온 미: 사랑, 그 지긋지긋함과 서글픔에 관하여 (0) | 2012.11.13 |
| 비지터: 가슴을 울리는 소리, 마음이 열리는 소리 (0) | 2012.11.12 |
| 업사이드 다운: 잠시 업됐다가 내리 다운되는 부실 러브 스토리 (0) | 2012.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