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고대 사회로부터 노예나 하층 계급의 사람들, 혹은 적국의 포로 등에게 정보나 증언을 받아내기 위하여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반란과 저항을 봉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여 왔다. 그 어두운 역사는 중세와 근대를 지나며 이어져 왔고,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지만, 이른바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우리나라도 헌법상으로 고문은 완전히 폐지되어 있으며 형사소송법 등으로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보면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개인에 대한 잔혹한 고문의 역사는 그리 멀지 않은 최근까지 이어져 왔으며, 권력의 부당함에 항거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우리 정부는 수많은 사람에게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고, 영혼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잔인하고 끔찍한 고문을 행사하고 투옥해왔으며, 심지어는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이 영화는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시절인 1985년, 재야 민주화 운동가였던 고 김근태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의 자전적 수기인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947년 부천 출생인 그는 당대의 명문 학교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데, 학생 운동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며 그 이후로도 줄곧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고,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초대 의장이 되면서 독재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영화는 운동가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악명이 자자했던 남영동 대공분실로 그가 끌려가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민청련 의장인 김종태(김근태, 박원상)는 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가족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지만, 워낙 그렇게 미행과 연행이 잦은 터라 별생각 없이 가족을 안심시키고 순순히 따라나선다.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간 곳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그곳은 공안수사를 벌이는 경찰이 좌익사범이나 간첩을 색출한다며 민주화 인사들을 잡아다가 혹독한 고문으로 허위 사실을 날조하고, 자의적으로 이적 단체를 조작하고 구성해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과 단체를 감옥으로 보내고 와해시키는데 앞장서던 곳이다.
'남영동 1985'는 상영 시간 대부분을 바로 그곳 남영동 대공분실을 무대로, 독재정권이 민주화 운동가인 김종태를 온갖 방법으로 고문해서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으로 탈바꿈시키고, 그가 관계된 인맥과 단체를 모조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가려고 애쓰지만, 끝끝내 결백을 주장하는 김종태에게 극악무도한 전문고문기술자인 이두한(이근안, 이경영)을 투입하게 되고, 그로부터 김종태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게 하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지게 하는 22일 동안의 참상을 에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고문을 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 고 김근태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 중에서 -
이 영화는 고문이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파괴적 행위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고문 행위는 누구의 지시에 의해, 어떤 목적을 위해 저질러진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국가권력에 반기를 든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들쑤셔놓으면서, 남은 생의 시간 동안에도 그 가혹한 고통 속에서 비통스레 살게 한다는 것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지 묵직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1985년의 사건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청산되지 않는 과거 죄악의 잔재는 여전히 현재를 관통하며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는데, 우리가 지난 일이라고 치부하며 그 역사를 그냥 덮어버리고 침묵한다면 그것은 그 죄악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1985년의 사건을 2012년으로 가져와서 우리에게 지금 어떤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지 답을 구하고 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에는 비단 김근태만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 농민, 종교인, 사회 활동가, 학생 등 숱한 사람들이 그러한 고초를 겪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주인공의 이름을 '김근태'라는 고유 명사로 한정 짓지 않고,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김종태'라는 극 중 인물의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지향점과 사회적인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리던 수많은 '김근태'의 모습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시의 독재정권이 야만적인 이유는 단지 그 물리적인 폭력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바탕으로 해서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말살할 수 있던 그들은, 일면 회유책을 동원하면서 자신들이 벌이는 일이 합당한 근거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음을 주장하거나, 그 누구도 자신들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목숨도 가차 없이 빼앗을 수 있다면서, 동지와 지인들에 대한 허위 진술을 강요하여 그들까지 옭아매도록 하여, 고통스럽고 심약한 상태에 놓인 한 개인의 인간성과 영혼까지 처참하게 조각내는 그들의 정신적인 폭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복도 너머로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비명을 듣게 하며 공포심을 증폭시키고, 그렇게 두려움과 무서움에 떠는 사람에게 거짓으로라도 동료와 지인들의 허위 죄목을 인정하도록 만들어, 그 죄책감에 울부짖는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감히 짐작이나 하랴!
그런 의미에서 능글맞은 웃음으로 김종태를 구슬리려는 윤 사장(문성근)의 존재는 고문기술자인 이두한만큼이나 분노가 향하는 인물이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어떻게든 결과를 내겠다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박 전무(명계남)의 모습은 순진하게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보는 시간 내내 화면 가득 전해지는 김종태의 갈등과 고통을 마주하는 게 참 힘들었다. 하지만 그 말도 되지 않는 시간을, 세월을 견뎌낸 사람도 있는데 차마 고개를 돌리거나 숙일 수도 없었고, 오히려 눈에 힘을 주어 바라보았다. 고문으로 핍박받던 한 사람의 모습을, 그 고통과 비참한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는 김종태의 모습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히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없었던 것으로 덮을 수 없고, 그 과거는 우리의 지금을 지나 미래로 갈 수도 있기에 버텨야 한다.
고문 장면만으로 거의 구성된 영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런 끔찍한 일들이 가능했던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는 단순히 그 슬픔을 극복하고, 과거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그 끔찍한 칠성판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바로 지금부터 앞으로의 역사를 올곧게 세우는 것부터 시작일 테니까!
정지영 감독의 연출은 딱히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게 없이 매우 단도직입적이면서 감정의 표현을 조금도 넘치지 않게 연출하는 것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남영동 1985'를 지나간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가 아닌, 어떻게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앞날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할지언정, 한 편의 영화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게 된다면 변화의 작은 동력이 되지 않을까?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두드러진다.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열연한 박원상은 실제 고문 행위를 방불케 하는 고된 연기를 펼쳤는데,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의 울음과 절규를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극장 여기저기에서 소리 내며 우는 관객들의 소리가 영화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의 연기가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가닿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 내팽개쳐진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가족의 환영을 보는 모습에서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의 이경영은 피의 온도가 영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연기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피해자인 김종태 역할보다 가해자인 이두한 역할이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었을 텐데 칼로 도려낸 듯한 냉철한 모습을 구현해낸다. 다른 조연들도 제 역할에 거슬리는 배우는 없었는데, 심리적 동요를 보이던 이 계장 역의 김중기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이두한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김종태의 모습에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용서라는 말의 의미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용서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며 또 한 번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종태의 실재 인물인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말투가 어눌해지고 몸의 거동도 불편하게 되며 결국 파킨슨병을 얻게 된다. 그 끔찍한 사건을 미국의 인권단체에 어렵사리 고발하면서, 전 세계에 남영동 대공분실의 존재가 알려지고, 김근태는 국제인권상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과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Namyeong-dong 1985
감독: 정지영
* 웬일이냐! '영등~위'가 이 영화에 15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잘한 건 잘한 거니까, 칭찬하고 싶다.
근데, 이런 당연한 판정에 은근슬쩍 고마운 생각이 드는 이건 뭐지? -_-..
**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안기부를 비롯한 정보기관은 자기들끼리 직급을 부를 때 사장, 전무, 부장, 과장, 계장 등으로 불렀다. 그러면서 자기가 속한 곳을 '회사'라고 불렀다. 어떻게 오래오래 잘 다니다가 정년퇴직들은 하셨으려나?
*** 지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후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정지영 감독과 배우 명계남, 박원상 씨가 함께 자리했다. 질문 시간에 박원상 씨에게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거나 후유증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원래 어릴 때부터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서 수영도 못했는데, 영화 촬영 기간에 물고문 장면을 찍으면서 그 공포증을 극복했다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볍게 대답한 것처럼 보이지만 촬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다. 정말 대단하다.
한편, 명계남 씨는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말을 건네자, 이 영화에 출연료 없이 출연했다면서 관객들 여러분께서 많이 와주셔야 저도 먹고산다고 말해서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는 원래 선한 사람인데 이번에 악역을 맡으면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머릿속에 어떤 신문을 떠올렸더니 연기하기가 아주 쉬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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