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은 결국 꿈은 꿈일 뿐이라는 얘기다.
누군가 무슨 꿈을 꾸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이란 것.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현실이라면, 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현실은 모두 인식할 수는 없어도 가능한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만, 꿈은 그 안에서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깨고 나면 현실과 아무런 연계성을 갖지 못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러한 것을 뒤집어버린다.
꿈 속에는 엄청난 규모와 세세함으로 세워진 공간이 존재하고 심지어 시간적인 연속성을 갖기도 한다.
게다가 꿈을 꿈꾸는 이의 의식에 의해 설계하고 조정하기까지 한다.
별다른 무리수만 없다면 언제고 다른 사람들과 꿈을 공유하기도 하며, 그 안에서 오랜 시간과 세월을 살았어도 현실로 돌아오면 고작 몇 초 혹은 몇 분에 불과하다.
오히려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꿈속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그곳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프로이드의 이론에서 말하는 자아로서의 존재가 현실에도 꿈에도 존재할 수 있다니!
나로서 기억되고, 나로서 인식되며, 나로서 실행되는 자아는 나 이외의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인 세계에 교류하며 반응하고 행동한다.
감독은 바로 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현실과 꿈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꿈속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자기의 존재가 실재하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안에서 살아가려면, 자아라는 의식이 담겨 있어야 할 곳은 꿈이 아니라 현실의
자기 몸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서
'토템'이 기능하는 이유는 의식의 상태만으로는 의심스러운 상황을 깨닫기 위함이다.
스스로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상황, 스스로가 계획한 상태의 공간조차 의심해야 하는 상황.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심각하고 무거운 은유가 아닐까?
꿈속의 공간은 이상향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꾸는 세상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이 제거된 그런 이상적인 곳일까?
꿈속의 공간이 무너지는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며, 결국 사람들이 이상향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내가 계획하고 설계한 가상의 혹은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공간이 아니라,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의 세계를 현실로서 자각하며 받아들이는 때에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꾸며지고 어떤 식으로 건설된 공간의 세계인가 하는 물적 토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논점의 중심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하다.'라는 장자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호접지몽의 장자처럼 가끔은 잠꼬대를 하듯이 꿈과 현실의 경계 중간쯤에 놓여진 듯한
그러한 기묘하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날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데카르트가 말했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용한 그 뜻에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다.
현실과 꿈이 뭐가 다른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부조리하고 어수선하고 고된
꿈같은 현실에서 깨어나려면 죽어야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읽어서도 안된다.
우리가 사는 바로 여기가 우리가 실존하는 공간의 실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토템에 기대서라도 악착같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 팽이는 결국 넘어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계속 돌아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쫙 끼치는 크리스토퍼 감독의 질문.
"네가 지금까지 나의 영화속에서 본 것이 꿈이게? 현실이게?"
그래, 아주 가끔은 극장에서 나올 때 나는 꿈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제서야 자기의 필모그래피의 부실함을 상쇄하는 역할과 연기를 펼쳤다.
* 영화 초반에 마리온 꼬띠아르의 등장 즈음, 에디뜨 삐아프의 '후회하지 않아'가 흐를 때 살짝 웃음이 나왔다.
영화 라비앙 로즈에서 그녀는 에디뜨 삐아프 역할을 맡았었기 때문이었다.
* 극장이 아닌 곳에서 이 영화를 본다는 건, 김이 다 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을 것이다.
2시간 3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꿈을 꾸는 시간을 바라든, 현실에서의 탈출을 바라든 혹은 그저
어느 공간의 상황이 되었든 나를 어디론가 좀 데려가주길 바란다면, 극장으로 가라!
* 매트릭스나 메멘토를 보며 지적 유희를 즐긴 사람이라면 환호할만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 인셉션의 장르는? 싸이파이 철학적 두뇌유희 블록버스터!?
* 영화가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의 반응은 대략 8-2의 비율로 '엥?' '아......!'였다.
깨닫지 못한 자, 어쩔 수 없다. 영화를 더 보든지 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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