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가 감독으로 참여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 따위는 땅속 깊이 묻어두고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진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현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을 펼치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생산성과 실적을 담보해내야 하는 영업사원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담겨 있다. 쓸데없는 과잉 치료와 투약, 돈이 되는 환자만 받으려 하고 심지어 환자의 등을 쳐먹는 병원의 '의료 자본'으로서의 파렴치한 꼬라지와 국민의 건강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의료 민영화를 통해 의료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쪽으로 몰아가려는 정치 세력.
국민에게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아프면 그냥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돈 몇만 원이 없어서 병원을 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엄존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사람의 생사를 다루는 의료 행위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지의 우선 고려 대상이 되어 버린 현재의 상황이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식코(Sicko)가 생각나는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심장질환을 앓는 아이의 아버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네티즌들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병원비를 가까스로 해결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다소 주제의 선명성을 희석화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가지 통계 자료등은 이제까지 너무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서 새삼스럽게 다루는 효과가 그리 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환자와 의사 그리고, 병원과 정치권 사이에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는 점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현직 의사라는 감독의 처지를 공격적으로 감안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체의 포지션에서 의사는 한걸음 빠져있는 느낌이 있다. 그런 단점과 달리, 어려운 상황일텐데도 인터뷰에 응한 현직 의료진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에서는 그들의 처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영화의 초점이 주제를 상정하고 직선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가슴 뭉클함을 담아냈다는 장점도 보게 되었다.
암과 같은 중병이 걸리면 온 재산을 거덜 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가진 사회. 심각한 장애가 있는 자식이 있어도 허름한 집 한 칸이 있으면 사회의 복지 정책에서 소외되는 사회. 몸이 아파도 자꾸 병원 가는 것이 정부에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G20'을 여는 '국격'을 가진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현행 건강보험 체계를 기본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임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의무인 국민의 건강 지키기를 의료 민영화를 통한 산업 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은 복지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공공 의료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무참히 던져버리는 국가의 대국민 배신행위를 넘어 국민의 죽음을 방기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강을 살린다는 취지로 수십조 원을 퍼부으면서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의 틀조차 만들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모든 것에 대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다 해도 국방과 의료만큼은 정부의 책임이다."
신자유주의를 주장했던 영국의 전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도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가족들을 위해 차라리 사망 보험금이라도 타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나라. 문제는 바로 돈이다! 저소득층은 무덤으로, 중산층은 빈민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재의 의료 체계로도 모자란가! 돈이 없으면 그냥 앓다가 죽어야 하는, 지금보다 더한 지옥을 소환하는 '의료 민영화'.
우리의 무관심은 우리 스스로 목숨을 '자본'의 손아귀에 떠맡기게 한다. 알지 않는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White Jungle
감독: 송윤희
*
국밥 처먹고 경제를 살리라고 했는데 도대체 뭘 살린 거야? (주어는 없음)
**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을 조금 더 대중적인 언어로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슴에 와 닿는 환자들과의 인터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거야 원 보는 내내 가슴에 바늘이 꽂히는 느낌이어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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