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치(마이데 코키)는 화산재가 뽀얗게 내려앉은 책상과 책가방을 걸레로 닦으며 저 화산이 폭발해서 가고시마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동생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와 아빠 켄지(오다기리 조)가 있는 후쿠오카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코이치는 아빠와 헤어진 엄마 노조미(오츠카 네네)를 따라서 외할머니(키키 키린)와 외할아버지(하시즈메 이사오)가 사는 가고시마에, 류노스케는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에 따로 떨어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코이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 두 대가 서로 교차하며 지나는 순간에 엄청난 기운이 생기는데 그때에 소원을 빌면 진짜 이뤄진다는 것이다.
지도를 펼치고 그 교차 지점이 가깝게 보이는 곳을 찾아낸 코이치는 친구들과 함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곳으로 떠날 계획을 짠다.
코이치와 류노스케를 필두로 소원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모험적인 시도는 과연 그들의 소원을 실현할 수 있게 될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생각과 그들 또래에서 벌어질 법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빚어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헤어진 엄마 아빠와 다시 함께 살기를 갈망하며 화산이 폭발하기를 바라는 코이치로부터 흠모하는 여자 선생님과 결혼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진 아이,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진 아이 등의 모습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세계를 보게 했다.
소원을 빌기 위한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는 장면이나 동시에 조퇴하기 위해 어설픈 꾀병을 부리고, 혹시라도 계획이 실패할까 봐 외할아버지에게 거짓말까지 부탁하는 모습 등에서는 한참을 웃으며 그들이 주는 재미를 만끽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두 열차가 교차하는 그 시점에서부터 그들의 모습은 뭔가 좀 이상했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가자 아이들은 그다지 유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서 자기가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하길 빌지도 않았고, 류노스케는 형과의 약속을 어기고 '가면 라이더'가 되기를 외쳤다.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음에도 실망하지 않았으며, 뛰어난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와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아이,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 또한 기적을 이뤄준다는 고속열차 신칸센이 지나간 후에도 기대가 어긋남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소원을 이루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야구 선수 이치로가 카레를 잘 먹는다니까 자기도 카레를 열심히 먹는다면 이치로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늘 소극적이어서 자기의 꿈을 이루는 것에 주저하던 아이는 과감히 배우가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나겠다고 엄마에게 선언한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에는 기적 같은 것은 없지만, 소원을 위해 열심히 달려나가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마음속에 자기만의 소원을 품고 기적을 바라며 달려가는 활기찬 모습에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일확천금의 요행을 바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순수함이 담겨 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결국 소원 빌기를 포기하고 마는 코이치의 모습을 보며 어른으로서 괜한 미안함마저 느껴졌다.
그들이 가진 희망의 태도에 비해 어른들이 끌고 나가는 세상은 절망적인 것들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화는 기적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 배어 있는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소 상투적이고 낡은 표현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에는 그런 삶의 순간순간에 보이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종종 별 생각 없이 쓰곤 하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정말 하찮고 보잘것없는 시간일까?
코이치와 류노스케가 서로 양보하는 과자 부스러기의 맛이, 자판기 아래에서 줍는 동전 한 닢이 그저 사소한 의미에 지나지 않을까?
영화가 말하는 기적의 의미는 기적을 이루어낸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 시작 지점을 이르는 말이다.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긍정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초래하는 소원을 빌지 않는 것, 이러한 것이 기적이 아닐까?
어제보다 한 발 더 옮겨 놓는 오늘의 발걸음, 내일은 또 한 발 더 내딛겠다는 의지, 바로 그게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코이치는 매일 화산이 끓어서 화산재가 날리는데도 무심하고 둔감하게 대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일 뉴스에서 들리는 험하고 악하며 정의롭지 못한 이야기에 무심한 어른들이 아이들은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 무심함과 둔감함을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형제가 따로따로 떨어져 살아가도록 만들었는데도 철부지처럼 구는 아빠를 류노스케는 질타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의 헤어짐이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임에도 코이치와 류노스케 형제는 언젠간 함께 살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삶에 대한 긍정성과 희망의 자세를 잃지 않고 순수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적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들이 더 이상 세상에 기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절망과 포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奇跡, I Wish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코이치와 류노스케 역으로 나오는 마에다 코키와 마에다 요시로는 실제 형제라고 한다.
귀엽고 깜찍한 그들의 모습과 더불어 야무지고 차진 그들의 연기에 감탄했다.
** 유명 배우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오다기리 조나 오츠카 네네, 키키 키린과 하시즈메 이사오의 연기도 참 좋았다.
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배경이 되어 더욱 영화가 촘촘한 재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놓쳤던 영화, 이렇게 개봉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작은 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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