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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절망과 희망, 눈물과 웃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는 게 인생

evol 2012. 1. 4. 19:23

 

 

교통사고가 나는 것이 두려워서 운전 면허증도 따지 않았고, 아침이면 건강을 위해서 조깅을 하는 아담(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 Levitt)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지만, 방송국의 라디오 작가로 일하며 성실하게 지내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에게는 다소 게으르고 다정하게 대해주지는 않지만, 여자친구 레이첼(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Bryce Dallas Howard)이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앞날이 창창한 나이의 그가 희귀성 암인 척추암에 걸린 것이다.

 

'50/50'이라는 제목은 아담이 암을 이겨내고 회생할 확률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암에 걸린 청춘의 눈물겹고 슬픈 투병기를 그리고 있지만은 않다.

폭풍 같은 눈물을 짜내는 신파도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히스테리적인 발작을 부리는 주인공의 우울함도 없다.

죽을 수도 있는 50%의 확률과 살 수도 있는 50%의 확률이 어쩌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바로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의 아담과 그의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자신을 돌봐줄 것으로 알았던 여자친구 레이첼은 결국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담을 속이고 바람을 피운다.

레이첼은 자기의 삶의 영역이 아담이 드나드는 병원의 그 암울함과 뒤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암에 걸린 남자친구인 아담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타인의 삶으로 말미암아서 어쩔 수 없이 망가지는 것에 동의하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할 수 없지, 뭐."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사이에서의 '희생'이라는 개념에는 상대의 고통과 짐을 나누겠다는 숭고함이 담겨 있다.

레이첼이 아담에게 잘못한 부분은 아담을 돌보지 않은 면보다 아담에게 진실하지 못한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진실함을 상실한다는 것은 관계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다른 병도 아니고 암에 걸린 남자친구에게 차라리 관계의 절연을 선언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아담에게는 절친 카일(세스 로건, Seth Rogen)이 있다.

언뜻 보면 참 깊이감 없는 그는 심지어 아담이 암환자라는 것을 이용해서 술집에서 여자를 꼬실 생각을 하는 생각 없는 친구다.

친구인 아담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번민하는데 툭하면 아담에게 술집을 가자고 졸라대는 철없는 카일에게 아담은 급기야 귀찮음과 실망감에 화를 내게 되는데, 그의 집을 들르게 되면서 카일의 진심을 알게 된다.

 

카일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웃음을 바가지로 퍼붓는다.

시시껄렁한 태도로 때론 멍청한 위로를 전하는 카일의 모습에서 어이없는 웃음도 나오지만, 아담을 배신한 레이첼에게 분노어린 말을 퍼붓는 장면에서나 그런 상황에 직면한 소심한 아담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장면은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장면이었다.

나에게도 저런 친구가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큰 위로와 힘이 될 것 같은 모습을 카일은 보여준다.

 

 

 

영화는 그렇게 아담이 처한 죽음의 상황에 한정된 내용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여자친구와의 갈등과 이별, 둘도 없는 친구와의 우정, 부모님과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담겨 있다.

특히,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담의 엄마는 자식마저 암에 걸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간간이 보이는 아담 엄마의 모습에 배인 깊은 슬픔을 보는 것은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갖게 했고,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에서 커다란 사랑을 느꼈다.

 

어찌 보면 참 별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 담긴 재미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어떤 극적인 고조와 반전의 국면은 없지만,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품게 하고, 눈물 속에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영화다.

'50 대 50'이라는 건 산술적인 측면에서의 반반이라는 개념보다는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삶 속에는 어느 한 쪽 성분이 '100'으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기쁨의 건너편에 있는 슬픔을 무작정 피하려고 할 게 아니라, 언제든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뒤섞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아담은 어설픈 손짓이지만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하는 심리치료사 캐서린(안나 켄드릭, Anna Kendrick)을 만나게 된다.

차 안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어린 나이에 심리 치료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터라 환자를 대하는 것에 서툴지만, 캐서린과 아담은 진심의 눈빛과 솔직한 마음을 통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 또한 참 전형적인 이야기이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려울 때에 진심 어린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50/50'은 한마디로 느낌이 참 따뜻한 영화다.

암에 걸린 환자를 주인공으로 다루면서도 유쾌한 웃음의 줄기를 어색하지 않게 배치한 점이 커다란 장점이다.

그리고 인물과 인물의 관계와 에피소드들이 표피적인 나열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느낌으로 어우러지는 점이 또한 장점이다.

절망과 희망, 눈물과 웃음, 슬픔과 기쁨 그런 모든 느낌을 통해서 바라보는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내 주위의 사람들을 다시금 짚어보게 해주는 시간을 안겨주는 영화.

막연한 기대가 아닌 긍정의 힘이 무엇인가를 따뜻함으로 안겨주는 느낌 좋은 영화다.

 


 

50/50

감독: 조나단 레빈(Jonathan Levine)

 

* 영화를 기획하고 각본을 쓴 윌 라이저(Will Reiser)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은 영화라고 한다.

 

** 조셉 고든 레빗, 그야말로 눈빛으로 연기한다.

그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진 눈빛이 이제 갓 서른의 배우라는 것에서 참 놀라우면서도 기대감을 더욱 갖게 하는 배우다.

 

*** 세스 로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저런 친구가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될 것이다.

유쾌함의 에너지가 잔뜩 묻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