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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그들이 맞잡은 손, 용기와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evol 2011. 12. 12. 23:59

 

 

남북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렇지만,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사회적인 제약과 노골적인 인종차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영화는 1960년대의 미국 남부 지역인 미시시피 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주로 흑인과 백인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흑인 여성은 가사 노동을 하는 가정부로 일하고 백인 여성은 고용주의 위치에서 그들을 부리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이다.

 

흑인 가정부들은 청소와 빨래, 음식 준비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하는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인 고용주는 노동강도에 상응하는 마땅한 임금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멸시와 모욕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한다.

그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변기를 함께 쓰는 것도 거부하는 백인들의 태도는 노예를 대하는 주인의 그것과 닮아 있다.

'헬프'는 작가 지망생인 스키터(엠마 스톤, Emma Stone)가 흑인 가정부로 살아가는 에이블린(바이올라 데이비스, Viola Davis)과 미니(옥타비아 스펜서, Octavia Spencer)를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을 그려낸 감동적인 드라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영화화한 '헬프'는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을 어둡거나 무겁게 이끌고 있지 않다.

갈등을 빚고 있는 백인 여성들과 흑인 여성들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세세하게 드러내는 접근이 아니라, 곳곳에 잔잔한 웃음과 소소한 재미를 배치해서 풀어가는 방법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런 면이 많은 대중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다소 가벼운 해소의 길을 택했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을 어릴 적부터 길러준 콘스탄틴(시슬리 타이슨, Cicely Tyson)이 어떤 수모를 겪으면서 엄마 샬롯(앨리슨 제니, Allison Janney)으로부터 해고되어 떠나갔는지를 알게 된 스키터가 흘린 눈물의 의미가, 영화에 전개되는 흑인 여성들의 고난사에 대한 사과로 비치고 동시에 그들로부터 받은 도움의 가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파고가 높은 극적인 구성이 아님에도 영화에 담고자 한 연출자의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는 점이 오히려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매우 선명하고 명암과 대비가 분명한 캐릭터의 힘이 영화를 지탱해나가는 굉장한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스키터는 그 당시의 여느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흑인 가정부와 오랜 시간을 살았고, 또래의 다른 여성들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 평이한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변변한 데이트 경험도 없이 자신의 일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진취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어이없는 백인의 잘못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에이블린은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아이를 늘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성격을 가졌고,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난 미니는 차별과 멸시의 세상에서 인내와 침묵으로 살아가는 것이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시원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악역인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Bryce Dallas Howard)는 자기가 고용한 흑인 가정부들을 노예처럼 대하며, 무시와 차별의 시각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미니로부터 신비로운 맛의 파이를 선물을 받는데, 그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경악하게 된다.

영화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미니의 통쾌한 복수극, 좀 찝찝하긴 했지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백인 여성들과 달리 가정부인 미니에게 친근하고 거리낌 없이 대하는 셀리아는 다른 백인 여성들이 어울릴 틈을 주지 않는데, 그것은 마을의 부녀자들 모임의 회장 격인 힐리의 전 남편이 셀리아의 지금 남편이라는 이유와 더불어, 아마도 미시시피의 잭슨이라는 그 마을보다 더 시골에서 온 탓이라서 흑인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남다른 이유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생애 처음 가정부를 두게 됐다며 환하게 웃는 셀리아는 약간 푼수 같기도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모습을 보여준다.

 

스키터와 에이블린, 미니와 힐리 그리고 셀리아가 엮어내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나는 대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씁쓸한 얘기들이다.

흑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던 당시의 상황에서 스키터가 쓰려고 하는 이른바 '흑인 가정부들의 백인 고용주 폭로'에 관한 내용을 인터뷰하는 일은 여간한 각오가 없이는 나서기 힘든 일이다.

마트에서 백인과 마주치면 길을 터줘야 하고,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그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돕겠다고 행사를 하는 것을 보며 요즘도 자주 보게 되는 비슷한 그들의 모습이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선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저런 모습이 50년 전의 모습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로울까?

 

남들의 잣대로,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평가하는 것은 결국 체면이라든지 지위를 자기 삶의 최상위에 놓는 어리석음이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사람들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진실과 진심을 외면하는 부끄러운 삶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용기라는 것은 진심으로 진실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바로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을 말하고 있다.

에이블린의 모습이 멀어지는 걸 보면서 그의 뒷모습이 힘차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의 걸음에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The Help 

감독: 테이트 테일러(Tate Taylor)


*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한 웃음으로 다소곳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제시카 차스테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에이블린 역의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미니 역의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도 정말 칭찬받기에 충분한 열연이었다.

조연 배우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참 탄탄하게 짜인 모습이었다.

 

**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동안 초콜릿 파이(우리나라의 특정 상품이 아니라, 서양식 파이를 뜻함)를 보면 웃음이 날 것 같다.

웃음과 더불어 어떻게 '그게' 들어간 파이가 맛있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