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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삶이란 수많은 선택과 끊임없는 책임의 연속

evol 2011. 12. 14. 22:44

 

 

부부인 씨민(레일라 하타미, Leila Hatami)과 나데르(페이만 모아디, Peyman Moaadi)는 이민에 대한 이견으로 말미암아 급기야 이혼을 결심하지만, 판사가 다시 생각해보라며 결정을 미루자 두 사람은 일단 별거하기로 결정하고 씨민이 친정으로 향한다.

씨민과 나데르가 갈등을 빚는 이유는 엄마인 씨민은 딸 테르메(사리나 파리하디, Sarina Farhadi)의 교육적인 환경을 고려해서 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데 반해, 아빠인 나데르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문제 때문에 반대하는 탓이다.

 

씨민이 친정으로 떠난 후에 나데르는 집안일과 아버지를 돌봐줄 가사 도우미로 라지에(사레 바얏, Sareh Bayat)를 고용한다.

라지에는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서 어린 딸을 데리고 먼 길을 출퇴근하며 일을 하는데 사실 그는 뱃속에 아기를 임신한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라지에는 치매를 앓는 테르메의 할아버지가 열린 현관문으로 밖으로 나가 거리를 헤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나데르는 아버지가 침대에 끈으로 묶인 채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심지어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자, 때마침 나타나는 라지에에게 돈 문제와 더불어 아버지의 문제로 몰아세우지만, 라지에가 결백을 주장하자 결국 라지에를 해고한다.

 

 

그러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라지에가 따지러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자 나데르는 라지에를 힘으로 밀어붙이며 문밖으로 밀쳐낸다.

그런 와중에 라지에는 계단으로 떠밀리며 쓰러지고 유산을 하게 되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라지에의 남편 호얏(샤합 호세이니, Shahab Hosseini)은 격분해서 병원으로 찾아온 나데르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나데르를 신고한다.

처음엔 가정의 불화를 다루는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는 그 후로 사건의 사실 여부에 대한 공방을 벌이며 추리극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란 영화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부부의 별거 문제로 출발해서 가정의 문제와 이란 사회의 종교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를 거쳐 인간 도덕성과 양심의 문제가 뒤섞이며 빚어지는 총체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씨민과 나데르, 라지에와 호얏이 주고받으며 구성하는 이야기의 밀도가 꽤 잘 짜여 있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의 처지에서는 과연 그들 중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또한 자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각본에 근거해서 만들어지는 극 영화가 때로는 사실보다 더 현실을 더 많이 반영하기도 하는데,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경우에도 이란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와 함께 보편적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성이 담겨 있다.

가족과 가정의 문제, 양심과 이해관계의 괴리, 종교와 규범의 문제들이 얽히고 엮이는 것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선택이 가져오는 커다란 진폭의 문제를 던져주는 영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쓰러뜨려야 하는가의 문제 앞에 섰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

영화는 종교적 신앙심과 가치관, 양심이라는 필터를 거친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의 경계가 명확하고 간단한 것인지 관객에게 묻는다.

선명한 대답을 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바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점적인 메시지 중의 하나는 그 부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라지에가 선택한 결과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법정 드라마의 형식이 들어 있는 구조이지만, 영화는 누가 범죄자인지 혹은 누가 악인인지 재단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자기의 판단에 의해 살아가는 보통의 인물들이다.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잣대를 들이대 봤자 그게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의 옳다고 볼 수도 있고, 그들 모두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이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회색적인 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야 할 문제가 있고, 그런 식으로 가리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나데르와 라지에는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어느 누군가는 결국 책임을 지고 만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되었다고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어느 사람도 온전히 그만의 잘못으로 빚어진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끌어와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어른들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떠넘겨지며 전이된다.

라지에와의 분쟁이 해결된 이후 씨민과 나데르는 딸과 아버지의 문제, 이혼이라는 파경으로 치달을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되고, 딸 테르메에게는 엄마와 아빠 중에 누구와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주어진다.

 

씨민과 나데르는 각자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이견의 조율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딸 테메르가 겪어야 할 고통을 짐작하면서도 차이의 폭을 좁히고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둘 다 옳고 둘 다 그르다!

 

테메르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판사는 씨민과 나데르를 밖으로 내보내고 답을 종용한다.

복도로 나온 씨민과 나데르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며 테메르의 선택을 기다린다.

이윽고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오르기 시작하지만, 끝내 관객에게는 테메르가 선택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어느 쪽인가와 상관없이 그들은 그 결과를 시작으로 거듭되는 문제를 풀어야 할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Jodaeiye Nader az Simin(Nader and Simin, A Separation)

감독: 아쉬하르 파르하디(Asghar Farhadi)

 

* 올해 열린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금곰상과 함께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작품이다.

작품상과 주연상이 동시에 주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한다.

시작과 끝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닌 상태에서 영화가 팽팽한 기운을 잃지 않은 것은 배우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 테르메 역을 연기한 사리나 파르하디는 감독의 실제 딸이라고 한다.

 

*** 라지에의 선택을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교를 대하는 태도, 무슬림의 성전인 코란 앞에 거짓을 말할 수 없어서 통곡하며 피해를 감수하던 그 모습의 여운이 계속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