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인 베카(니콜 키드먼, Nicole Kidman)와 호위(아론 에크하트, Aaron Eckhart)는 8개월 전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베카는 집 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아들 대니(피닉스 리스트, Phoenix List)의 자취를 맞닥뜨리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을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서 아들의 흔적이 밴 물건들을 하나씩 치우고 감추며 상처를 지우고자 애쓴다. 그에 반해 호위는 휴대폰에 담긴 아들의 동영상을 보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달래곤 한다.
베카와 호위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위로를 도모하고자 하는 모임에 참여하지만, 사람들의 종교적인 자위와 긍정적인 해석에 대해서 베카는 끝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비아냥 섞인 말을 던지고 더 이상 그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호위는 베카의 태도를 이해는 하지만, 그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배려하지 않는 베카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고, 아내를 향한 위로와 사랑의 몸짓을 섹스에 대한 욕구로 해석하며 거부하는 베카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떠안는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겐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의 상실감일 것이다. 8개월이 아니라, 8년이 지나도 그 슬픔과 아픔은 쉽사리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베카는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자동차 사고를 낸 제이슨(마일스 텔러, Miles Teller)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갖게 되고, 호위는 모임에서 알게 된 개비(샌드라 오, Sandra Oh)가 남편이 떠나간 사실을 위로하게 되면서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된다.
둘이 함께 극복해야 할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시간을 보내는 베카와 호위는 이제 두 사람의 관계마저 잃어가고 있다. 같은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치유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 할 두 사람은 급기야 서로에게 오히려 상처를 입히게 되고, 같은 공간에서 기거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사실상 자기만의 공간에 벽을 둘러치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며 자신의 슬픔과 아픔이 더 큰 것처럼, 자기의 처지가 더 힘든 것처럼 잔뜩 웅크린 채 시간을 지나고 있다.
'래빗 홀'은 영화 속에서 제이슨이 창작한 만화책의 제목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온 그 토끼굴,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의미하는 '래빗 홀'은 평행 우주론에 근거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또 다른 공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담은 이야기이며, 또한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와 똑같은 또 다른 '나'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도플갱어(Doppelganger)'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베카는 이 세상을 떠난 아들 대니가 '래빗 홀'을 통해서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을 게다. 제이슨 역시 자기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속죄하는 마음으로 '래빗 홀'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인 제이슨과 피해자인 베카는 서로가 가진 고통의 성분은 다를지라도 두 사람이 가진 고통과 마주하게 되면서 상대가 지닌 고통을 조금씩 덜어내어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베카와 제이슨을 보면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상대를 이해하고 동시에 잘못을 한 상대조차 용서하게 될 때 자기의 고통도 덜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고통과 직면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며 종교,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베카는 엄존하는 고통을 떨치기 위해서 신에게 기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영화는 도저히 받아들기 어려운 아들의 죽음,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자기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상실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 상심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느릿한 속도로 그려낸다. 후회할 수밖에 없는 지난 시간의 잘못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책 혹은 타인에 대해 책망을 한들 고통이 덜어지고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결국, 과거의 시간을 오늘에까지 이어와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순간조차 마주함과 동시에 등 뒤로 지나가는 과거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과는 찰나의 조우와 동시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거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쌓아가느냐에 따라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베카와 똑같이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진 베카의 어머니 냇(다이안 위스트, Dianne Wiest)이 베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라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통의 무게가 변하는 것이라고, 커다란 바위 같은 것이 어느 순간에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돌이 되어서 견딜만해 진다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거라고......
사람의 삶에 무수히 만나게 되는 아픔과 슬픔을 견디는 힘은 바로 그 '시간'일 것이다. 시간이 쌓이고 세월이 지나면서 고통과 비통함의 크기와 무게도 조금씩 풍화작용에 의해 작아지는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감독은 베카와 호위의 슬픔을 눈물로 끌어내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플래시백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고통을 가진 두 사람의 현재에 집중한다. 물론,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바위 같은 고통이 조약돌만 하게 작아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한다. 그래도 비록 지금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절망하고 주저앉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의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이렇게 말했다.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마라."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베카와 호위의 모습을 찬찬히 그리고 조용하게 지켜보는 영화를 보며 떠올린 말이다. 아무 말 없이 담담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을 담은 시간을 함께 지나는 것이 곧 위로이자 사랑일 것이다.
Rabbit Hole
감독: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
*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 니콜 키드먼의 창백한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고통의 시간 속에 몸에 흐르는 피마저 탈색된 듯한 모습에서 바스러질 것 같은 상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그렇다.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스스로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고, 차마 용서를 구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너무 쉽게 용서를 말한다. 심지어, 가해자 자신이 화해를 말하고 용서를 들먹인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잖아? 누구 맘대로 용서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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