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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의 맛: 나이 들고 늙어가는 삶의 쓸쓸함과 고독감

evol 2011. 9. 21. 23:13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과 더불어 일본 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그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나에겐 그의 유작인 이 영화가 처음이다.

다다미 샷이니, 360도 편집이니, 규격화된 구도 등의 것들로만 알던 그의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과연 내가 그의 필모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며 다른 영화들도 찾게 될는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난 머지않은 시간에 다시 그의 영화를 보려고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히라야마 씨는 아내와 사별한 이후에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다.

큰아들은 결혼 이후에 분가해서 살고 있고, 철없는 작은아들과 착하고 착한 딸과 더불어 지낸다.

늘 어린 딸로만 알고 있던 딸 미치코,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고 그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미치코도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됐고,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빈자리를 메워 줬고, 직장 일과 가사를 도맡아 하던 딸을 떠나 보내야 한다니.

결국 결혼을 성사시키고 히라야마씨는 그날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텅 빈 자리, 공허함, 허전함 등을 느끼며 밤이 깊어간다.

 

 

 

늙어간다는 것을 담아낸 영화다.

변함이 없고 늘 지금처럼 지속할 것 같지만 삶은 세월이 흐르며 결국 변하고야 만다.

헤어져야 할 것들, 떠나 보내야 할 게 점점 많아진다.

포기해야만 하는 것, 손을 놓아야 하는 것, 그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인간은 결국 혼자가 되고,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중심 줄거리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지만, 그 곁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차분하게 보인다.

다다미방에서 술을 마시는 중학교 동창들과 이제는 허름한 식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년의 은사, 히라야마 씨가 딸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 은사의 딸, 그녀는 아버지를 봉양하느라 평생을 미혼으로 살며 지금도 모시고 살지만, 가슴 속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울음이 가득하다.

 

 

 

삿포로 맥주와 돈가스, 썬토리 위스키와 Bar,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 사회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몇몇 장면과

당시의 군가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장면들.

일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했다.

 

영화의 제목이 '꽁치의 맛'이지만, 꽁치와 영화는 내가 보기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일본인들이 밥과 더불어 자주 먹는 꽁치 조림, 그냥 그 정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아닐까?

 

영화는 그러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고 있다.

어떠한 긴장감과 반전 따위나 극적인 구성도 없다.

삶은 그렇게 밥과 반찬처럼 담백하고 적당히 짭짤한 것이라는 듯이......

 

 

 

일상은 결국 변화를 감지해내기 어려운 만큼의 반복적인 시간의 연속이다.

영화는 그런 일상의 성격과 본질을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매끄럽게 전개해간다.

집과 직장에서의 생활도 반복되고, 술을 마시는 장소도 늘 반복적인 공간이며,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도 반복된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그렇게 변화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것이겠지?

내가 늙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게 아니라, 나의 외부의 것들이 나의 사고를 만들어 내듯이 그렇게?

나는 마치 그대로인데 나를 제외한 외부의 것들만 변해가는 것처럼 그렇게?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는, 쓸쓸히 홀로 앉아 있는 히로야마 씨의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많은 게 보였다.


 

 

 

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

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 사람의 뒷모습, 특히 나이 든 사람의 뒷모습은 더욱 나약하고 쓸쓸하게 보인다.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그러했다.

......

 

** 감독 자신은 결혼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