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게 들어선 암탉들이 양계장에서 알을 낳기 위해 사육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인 잎싹은 비좁고 답답한 양계장에 갇혀서 기계처럼 알만 낳으며 살아야 하는 처지를 벗어나 넓은 마당으로 나가기를 꿈꾸지만, 우여곡절 끝에 양계장을 빠져나온 후에는 이미 마당에서 생활하던 다른 동물들에게 떠밀려 마당에서 쫓겨나게 된다. 난생처음 들어선 세상에서 잎싹은 족제비 애꾸눈으로부터 위험한 처지에 몰리는데 그때 청둥오리 나그네가 잎싹을 구해준다.
황선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배우 문소리, 최민식, 박철민, 유승호 등이 목소리를 입혔고, 수채화를 보는 듯한 질감의 곱고 따뜻한 2D 애니메이션이며, 모성애라는 주제와 더불어 냉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본 후에 들었던 생각은 언뜻 생각하는 동화라는 게 마냥 밝고 쾌활하며 명랑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모든 동화가 아이들에게 현실 세계의 실상과 거리가 먼 모습만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결말만이 우리 삶에 놓인 것이 아님을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가르쳐주는 게 성숙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기를 구해준 나그네의 모습에 잎싹은 반하게 되지만, 나그네에게는 같은 암컷 청둥오리가 곁에 있음을 알게 되고 낙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족제비에게 암컷 청둥오리가 희생당하고 뒤이어 나그네까지 목숨을 잃게 된다. 홀로 남겨진 나그네의 알을 발견한 잎싹은 그때부터 정성껏 그 알을 품어주고 마침내 새끼 초록이를 맞이한다. 나그네의 유언대로 초록이와 잎싹은 늪으로 향하게 되고 그로부터 그들은 오해와 갈등, 주변 동물들과의 부딪힘을 겪게 된다.
잎싹이 마당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며 겪는 모험담이 하나의 줄기라면, 잎싹의 모성애가 발현되며 초록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초록의 고민과 방황을 다루는 성장 이야기가 또 하나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거기에 뺄 수 없는 양념처럼 작용하는 수달 달수, 참새 짹, 원앙, 박쥐 등의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며 내용을 풍부화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늪지대를 형상화한 풍경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다. (4대강 사업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삽질로 수많은 철새 도래지인 늪과 강변의 환경이 훼손된 것을 떠올리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좀 다른 게 어때서? 서로 달라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거야."
그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단점 중 큰 이유 하나는 역시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용의 빈곤함과 힘이 약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런 면에서 매우 탄탄하게 짜여 있다. 잎싹과 초록의 처지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거기에 '다름과 차이'가 '틀림과 잘못'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주제 의식도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른 종의 동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처럼 사람의 사회도 그러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고 각색 과정에서도 그 힘이 고스란히 잘 전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관람 가의 영화지만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가 이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영화란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이후에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반드시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여전히 소비되는 상품만이 아닌 예술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에서다.
잎싹의 일생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비록 자기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마음을 다해 헌신적으로 초록이를 길러 내는 그 모습에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단면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낳은 정보다 훨씬 더 큰 것이 기른 정이라는 생각, 남들과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서 거리감을 느끼게 되며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끝까지 자기를 희생하며 자식의 앞날을 위해 살아가는 '어미'의 모습.
무엇보다도 결말에서 잎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자연'이라는 단어의 의미,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는 장면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며 '공감'한다는 것의 행복감을 새삼 누릴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감동이라면, 감동을 받은 후에 우리는 삶 속에서 그 감동을 구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감동의 삶일 테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성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전문 성우보다 영화배우의 목소리 연기가 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배우를 볼 때 갖게 되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로 목소리를 입힌 배우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영화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에 적지 않게 거슬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수달 달수 역의 박철민은 박철민이 아니면 그 역을 더 멋지게 소화할 사람이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꼭 할리우드처럼 배우들을 쓰기보다는 전문 성우를 쓰는 걸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정말 좋은 영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났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이를 위한 동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지만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잎싹과 초록의 모습에서 다문화가정을 떠올리기도 했고, 입양 문제가 생각나기도 했으며, 장애아 문제가 보이기도 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그릇된 속담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도 새삼스레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우리의 '엄마', 엄마의 사랑 '모성애'의 위대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삶은 우리들의 어머니, 그 존재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마당으로 향한, 마당을 벗어나 힘겹고 고된 세상을 헤쳐나가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Leafie
감독: 오성윤
*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은 과연 악인일까? 사람을 위해 모든 동물은 당연히 희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런 의문들이 다시 한번 머리에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 올해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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