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잭 브라프, Zach Braff)는 어릴 적에 자기의 잘못으로 엄마를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그 시점으로부터 그에게 가족과 가정은 사라졌다.
절연하듯 10년 가까이 LA에서 살다가 엄마의 부음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엄마의 사고 이후에 그는 줄곧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고 그래서 늘 약에 의존해서 고통을 지나왔다.
장례식을 마친 후에 그는 병원을 찾았고 거기에서 사만다(나탈리 포트만, Natalie Portman)를 만난다.
사만다는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었는데, 둘의 첫 만남부터 끊임없는 수다를 늘어놓는다.
앤드류와 사만다는 그렇게 만났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잭 브라프가 각본과 감독과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은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봉하지 않았지만, DVD로 볼 수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지만, 영화는 결코 흥행성이 높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찾아보려면 퍽 쉽지가 않다.
꽉 찬 긴장감과 막판 뒤집기의 반전이 숨어 있거나, 잠시도 생각할 틈이 없는 짜임새가 느껴지는 이야기, 5분 간격으로 웃음을 주거나, 뇌의 작동은 멈추고 눈으로만 따라가도 되는 그런 영화들도 물론 볼만하고 좋을 때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내 발이 지면에 닿아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 비 온 뒤에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듯한 그런 냄새가 느껴지는 영화가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Coldplay의 'Don't Panic'이 흘러나온다.
영화 내내 흐르는 OST는 처음 듣는 노래도 있고 들어본 노래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모두 좋다.
상처, 외로움, 단절, 만남, 소통, 화해, 용서 그리고 치유.
거기에는 사랑.
사실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은 어쩌면 그런 비슷한 성분으로 구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른 성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또는 그 구성비의 차이가 있을 뿐......
앤드류가 가족과 가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서 살아야 했던 날들 동안 그는 눈물을 잃었다.
그리고, 사만다를 다시 만난 이후에 사랑을 얻게 되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어쩌면 다소 뻔한 이야기이긴 한데, 영화는 매우 독특한 느낌을 발휘한다.
옷을 입은 채로 비를 맞는데도 하나도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개운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잭 브라프의 연기는 좀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똑똑하게도 보이는 캐릭터 자체를 잘 보여준다.
어느 땐 정말 살짝 맛이 간, 그러면서도 어딘지 좀 느끼한 그런 구석이 보이기도 한다.
사만다(극 중에서는 줄여서 샘이라고도 부른다)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
결코, 예쁜 여자의 캐릭터가 아니다.
푼수기도 있고,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해서 스스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등 엉뚱한 여자애다.
그런데 그녀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이 서쪽 하늘로부터 무지개가 서서히 뜨듯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로 말미암아서 영화는 생기를 머금고 활력이 솟는다.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사만다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을 품고 살고 있다.
사랑은 여유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결핍되고 고갈되어 보이는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즉, 사랑은 타인에 대한 전면적인 자기 고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쁜 여배우라기보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평가는 이제 나탈리에게는 싫증이 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작지만 강해 보이는 나탈리는 참 예쁘고 똑똑하게 보인다.
영화 말미는 다소 아쉽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들어맞도록 잘 이끌어 왔는데 마지막 앤드류와 사만다의 키스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부분에서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마무리 같아서 감독의 고민이 다소 깊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사이드 카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 참 좋았다.
그 위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그것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영화 곳곳에는 약간의 희극적인 몇몇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다.
아마도 잭 브래프 감독이 코미디를 많이 찍기도 했던 그런 전력과 또 미국 영화 특유의 장치인 것 같다.
개가 나오는 몇 장면들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다.
미국의 독립영화쯤으로 불릴 수 있는 그런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뛰어난 뭔가가 담겨 있고, 심오하거나 퍽 무게를 잡는 그런 영화는 결코 아니다.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도(물론 적지 않은 사람은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과 영화가 무엇인가 교류할 수 있는 짬을 주며 틈을 준다.
영화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나에게 재미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딛고 선 그 자리에 있는 것인가 보다.
Garden State
감독: 잭 브라프
* 2004년의 작품이라서 나탈리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 귀여운 모습은 여전하다.
**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숙하는 건 아니라는 뻔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그런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 듣는 게 어제오늘,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생각을 새삼스레 다지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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