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케이크 등을 만들고 판매하는 카페를 여는 것을 꿈꾸던 두얼(계륜미)은 마침내 동생 창얼(임진희)과 함께 가게를 열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개업을 앞두고 꽃(카라)을 잔뜩 실은 트럭과 교통사고가 나면서 수리비 대신에 그 꽃을 개업선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되며, 개업을 축하한다며 찾은 지인들의 선물이라는 것은 자기들에게 필요하지 않아서 처치 곤란했던 바로 버려도 아무도 주워갈 것 같지 않은 그런 시시콜콜한 물건들이었다.
개점 이후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조금씩 손님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기가 만드는 커피와 디저트로 소문난 게 아니라 카페 안에 쌓아 두었던 그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이다.
창얼이 별 생각 없이 쌓여 있던 그 물건은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만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면서 카페는 명소로 소문이 나게 되고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이 그 물건들을 구경하고 교환하러 찾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두얼이 만든 커피와 브라우니가 맛있다고 칭찬한 단골 남자 손님(장한)이 자기의 물건들도 교환하고 싶다면서 35개의 비누를 싸들고 와서 두얼 앞에 꺼내어 놓는다.
그렇게 타이페이의 두얼과 창얼의 카페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지구적으로 커피는 많은 도시의 사람이 즐겨 마시는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았고, 도시에서 숲을 잃은 도시인들에게 카페는 그늘이 되고 사랑방이 되는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 되어 주고 있다.
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의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기획한 이 영화는 애초에는 타이페이라는 도시를 홍보할 요량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화면으로부터 쌉쌀하고 고소한 커피 향이 배어 나오는 듯한 영화는 포근하고 편안한 영상미로 표현되는 예쁜 모습을 담고 있다.
두얼과 창얼 자매의 모습은 그들의 머리 모양과 말투와 성격만큼이나 서로 조금씩은 다르다.
우유의 거품으로 무늬를 만드는 꾸밈새를 좋아하지 않는 두얼은 자기가 소망하는 꿈을 이루며 살고 싶어하며, 그에 반해 창얼은 털털한 성격처럼 무엇엔가 얽매이기 싫어하며 자유롭게 현실의 삶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의 모습에서 현대의 도시 여성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카페라는 공간이 도시적인 공간인 만큼 그 안에 기거하는 두 여성의 모습도 무척 도시적임에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영화는 딱히 어떤 사건이나 고조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때로는 독백과 혹은 설명하는 말로 이어지며 극 중에서의 '이야기'가 나열되는 형태를 하고 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카페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인데 어느 때부터 물건과 교환되는 것 중에 이야기와 노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물건에 담긴 이야기 또는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형국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도 '나만의 이야기'를 갖고 싶다는 두얼의 말처럼 영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제각각 자기만의 삶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이든지 그것은 같을 수가 없고 그 다름이 결국 내가 타인과 소통하며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 남이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삶이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런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그 이야기에서 전해져오는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시간의 무게가 커피의 향처럼 쌉쌀하고 부드럽게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어떤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줄만한 게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 지금 이순간에도 그렇게 지루하고 무료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들여다볼 것 없는 팍팍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삶이란......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 어쩌면 영화는 지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꿈을 꾼다는 것, 꿈을 꾸었던 지난 과거의 시간들, 앞으로의 삶을 꿈꾸는 것 그 모두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인가 대상에 대해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이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두얼과 창얼은 영화에서 분명히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로 임했다.
그런 책임있는 자세는 결국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며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도 만들어낸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준다.
굳이 타이페이라는 공간을 두고 말하지 않더라도 도시 속에서 카페라는 공간의 의미를 영화에서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카페는 기본적으로 커피를 파는 장소이지만 그 장소가 단순한 매매의 현장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홀로 혹은 둘 이상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시간을 풀어놓는 데에 있음을 영화는 말한다.
교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또한 그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아울러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는 원래의 제목처럼 서른 여섯 번 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두얼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관객에게 묻는 질문은 영화 속의 두얼과 창얼에게도 던져졌다.
그렇지만 두얼의 선택과 창얼의 선택이 어떤 이야기의 결론이나 마지막 결과물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부단히 성장하고 변화하는 이야기이자,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서 새로운 선택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며, 타인의 삶과 이야기로부터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풍성하게 하는 영향을 받기도 하는 그런 끊임없는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10˚C의 차가운 온도의 물처럼 살든, 30˚C의 따뜻함으로 살든, 70˚C의 뜨거운 물로 살든, 펄펄 끓어서 기체로 변화하든 그것은 온전히 자기의 책임과 선택의 몫이며, 그 책임과 선택을 소중히 하는 사람만이 자기의 꿈과 소망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第36個故事, Taipei Exchanges
감독: 샤오 야 췐
* 소녀의 모습이 여전한 부드럽고 싱그러운 매력의 계륜미, 웃음이 참 사랑스럽고 단발머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
반면 임진희는 약간 보이쉬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의 털털하고 발랄한 모습도 참 귀엽게 느껴졌다.
자매로서 굉장히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 소파족이라는 것,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의 카페는 촬영 이후에도 계속 운영을 한다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후 타이페이에 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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