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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전쟁이라는 참극의 악순환에 그을린 고통과 인내의 파편

evol 2011. 7. 26. 23:44

 

 

인간이 사는 오늘날의 지구에는 이념과 종교 등의 갈등에 의한 수많은 오해와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또한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와 사랑이 있다.

끔찍한 고통과 잔인한 증오가 반복되는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노력과 희생이 있다.

깊이 패인 두려운 절망의 구덩이 같은 지구에 과연 희미하게나마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은 존재하는 것일까?

 

쌍둥이 남매인 잔느 마르완(멜리사 데소르모-폴랭, Melissa Desormeaux-Poulin)과 시몬 마르완(막심 고데트, Maxim Gaudette)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어머니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 Lubna Azabal)의 유언을 전해듣고 당황하게 된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와 들어본 적도 없던 또 다른 형제에게 편지를 전해줘야 자기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잔느는 아버지를 찾고, 시몬은 형제를 찾게끔 하지만 시몬은 어머니의 유언을 이행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동 어디쯤으로 보이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의 삶을 알아나가게 되면서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 나왈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전쟁이 일어나던 그곳에서 정치범으로 몰리며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수사관의 성폭행으로 아기를 임신하게 되는 끔찍한 일까지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의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게 되는 삶의 자취 끝에 서 있는 더 커다란 비극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영화는 어머니 나왈의 과거 삶과 그것을 뒤쫓아 가는 잔느의 현재 삶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거기에는 한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비극이 함께 담겨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반전(反轉)과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반전(反戰)이 공존하지만, 전자의 그것이 그리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떤 극적인 결말의 충격과 그 충격의 증폭을 위한 형식으로 그런 설정을 했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삶과 닿아 있는 전쟁의 참극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잉태하는가 하고 생각되는 탓이다.

 

 

 

물론 분명하게 영화는 정치적인 측면과 인간의 역사가 빚어내는 상황에 대한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특정한 정치적 시각에 국한되어 편향된 이야기를 끌고 가지도 않고 주제의 무거움을 덜어내는 분위기로 이끌지도 않는다.

도리어 몰라도 되는 일이니까 그냥 덮고 가는 게 평화로운 것이 아니고 알아야 하는 일이라서 반드시 짚고 가는 게 진정한 문제의 해결을 할 수 있는 태도가 된다고 말하며, 고통스럽더라도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가 있어야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실 앞에 아무런 포장과 꾸밈없이 선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거기엔 용기라는 것이 필요할 텐데, 영화에는 그 용기의 근원이 바로 고된 인내로부터 온 커다란 사랑임을 알게 된다.

나왈의 삶을 보게 되면 과연 종교라는 게 인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종교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종교 자체로부터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는 인간의 삶에 고통과 불행보다 위로와 평안을 더 많이 안겨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사막처럼 종교 분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역사에 과연 종교의 힘은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

서로 배척하고 서로 배제해야만 하는 다툼을 벌이는 그곳에 도대체 구원과 안식은 언제 이뤄진다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런 전쟁의 굴곡진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인간이 희생되었는지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영화는 그런 악순환의 역사를 여성이자 어머니의 모습으로 버텨내고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영화의 내용은 단순히 영화만으로 해석할 수 없거나 영화만으로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나 보다.

 

그 어떤 신을 말하는 종교 단체의 모습에서도 한 인간의 위대한 사랑보다 더 큰 희생과 사랑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는 존재에 대한 원망이 클법한데 그조차 떠안는 나왈의 모습은 차마 그 마음을 상상할 수도 없다.

나왈의 죽음이 인류 역사의 반복되는 비극의 끝을 의미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왈의 영혼에 담긴 그 엄청난 고통과 슬픔, 그 모든 것을 인내한 사랑이 차라리 모든 종교를 사라지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힘보다 인류 전체의 역사가 갖는 의미가 더 큰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점점 살아갈수록 그것에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거부하는 양심조차 감옥행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과연 나왈의 삶과 사랑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왈의 삶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갈까?

 

얼마 전에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극우 민족주의자이자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테러 사건을 접하면서 그나마 선진화된 문화를 이룩한 사회라는 유럽에서조차 아직도 버젓이 자행되는 폭력의 실체에 당황스럽고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희들의 탄생은 공포 그 자체였지만, 그 배경은 위대한 사랑이었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나왈의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지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의 개발과 발전이 아니라 지극히 원초적인 사랑을, 나왈의 삶이 보여준 용서와 사랑을 통한 불행한 역사의 극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Incendies

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 영화의 오프닝에 쓰인 음악인 라디오헤드(Radiohead)의 'You and whose army?', 더욱 영화가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감독은 다른 곡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의 위상을 새로이 실감하는...... 맞다. 나 빠다. -_-..

 

**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는데 개봉하게 되어 참 반갑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세상이 그만큼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