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창녀다.'라는 제목을 대하면서 도대체 감독은 어떤 내용을 영화에 담았을까 몹시 궁금했다.
동시에 굳이 저런 제목이 아닌 다른 제목은 고려하지 않았나도 궁금했다.
이렇게 불쾌하고 불편한 제목으로부터 그리고 거기에 담긴 내용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영화를 본 후에 접한 감독의 영화잡지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조금은 그 심중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제 생각에 아들은 다 포주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가 엄마 피를 너무 많이 빨아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창녀다.'는 그걸 반성하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기도 해요.
'엄마는 창녀다.'를 보고 누군가 자기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전화 한 통화를 하면 이 영화를 만든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아요.
제 방식대로 그런 내용을 그린 거라 보시는 분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요."
영화는 다분히 은유적이지만 동시에 사실적이기도 하다.
신문에서 본 기사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각 인물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읽게 되면 더욱 그렇다.
상우(이상우)의 아버지(권범택)는 상우와 상우의 엄마(이용녀)를 버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는데, 양아들(정태원)에게 자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폭행을 저지르는 인간쓰레기 같은 존재이며, 자기에게 맞서는 상우에게 오히려 훈계하려 드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속물근성을 가진 자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상우는 에이즈에 걸려 더더욱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하게 하고, 생존을 위해 엄마의 포주로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데, 게다가 동네의 동성애자 소년(오영근)까지 치근덕거리는 상황에 놓인 극단의 처지에 놓여 있다.
자기 자신의 피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상우, 그가 도대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이런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을 늘어놓으며 등장인물들로부터 적지 않은 문제를 토해낸다.
상우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를 증오해서 엄마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 게 아니다.
제목만으로 혹평하고, 상우가 포주 노릇을 하며 엄마에게 창녀 역을 시키는 것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오해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나이가 마흔이 되어 가도록 부모님에게 빌붙어서, 아니 나이가 더 먹어도 끊임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어떻게든 뜯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면이 아닌가?
엄마가 창녀인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을 희생해서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며 헌신하는 엄마의 사랑을 봐야 한다.
그 누가 영화 속의 엄마를 욕할 수 있을까.
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엄마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삶을 이어가지만, 하루하루를 답답함과 괴로움 그리고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으로 보낸다.
엄마에게 삼겹살을 구워 주며 함께 밥을 먹는 장면, 엄마와 상우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참 아팠다. 그 상황이 그리고 그런 현실이 참 아파서 그들의 사랑이 더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또 다른 엄마가 등장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기도를 하는 기독교 맹신도 엄마(김지희)는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그런 이기적인 종교관, 인생관이 자식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의 아빠이자 자기의 전 남편이 죽자 신께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배타적인 종교인들의 잔인함에 새삼 오싹했다.
어디에도 진정한 사랑은 없고 탐욕과 독선만이 가득한 그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 엄마의 밑에는 오히려 물질적으로 풍부하면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런 소통도 없는 의붓아버지와 정작 자기의 고민과 아픔은 돌보지 않는 엄마와 함께 사는 집이 지옥 같은 딸 희수(유애경)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둘 곳이 없고,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채 방안에서만 살아가는 아들 희철이도 가정과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슬픈 존재들이다.
온통 상처와 결함투성이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이니까 나는 모른 체 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저들의 삶과 얼마나 먼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가장 추하고 비참한 곳에 있는 상우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낯선 종교인의 손에 이끌려 엄마는 사라진다.
상우는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이유를 상실한 채 참혹한 비극의 결말로 치닫는다.
영화적 설정이라고는 해도 어떤 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 또한 마음이 유쾌하거나 편안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 싫은 현실이라고 눈을 감는다고 그 현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우리가 보기 역겨운 현실의 문제라고 어딘가로 치운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절도, 사기, 강도, 매춘, 성폭행, 살인 등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도 아니고, 외면해서도 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영화보다 훨씬 더 패악스럽고 흉측하고 처참한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그리 충격적이기만 하진 않을 수도 있다.
상우와 상우의 엄마가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워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 나는 무관심으로 일조하지 않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감독의 말처럼 내가 과연 부모님 특히나 엄마에게 사랑의 작은 조각이라도 드렸던가 처절하게 반성한다.
나 역시 엄마의 살과 피를 뜯고 빨아 먹으며 모진 세상으로 엄마를 내몰았던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죄스럽기 한이 없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이상우 감독의 화법으로 말하는 종류의 영화도 충분히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Mother Is a Whore
감독: 이상우
* 2010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이상우 감독의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메가 토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참 직설적이고 솔직하면서도 꾸밈과 가식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에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어! 이상우 감독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받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 감독님 영화 '아버지는 개다'의 표를 구하지 못해서 다른 거 보러 가는 길입니다."라고 했더니, 잠시도 망설임 없이 그럼 자기한테 있는 표 한 장 줄 테니 보라고 하셨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일행도 있어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던 일이 있었다.
돌아서면서 사람이 권위적인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이 참 투명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 이상우 감독은 자기의 연출작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균일하지 못한 면이 있긴 한데 이상하게 그 모습에서 진실함이 전해진다.
다른 감독의 연출작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과연 어떤 다른 면이 있을지 참 궁금하다.
*** '내 아버지의 모든 것'에서도 그랬지만, 동성애자(게이)를 다루는 측면이 너무 가학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다루는 것 같다.
본인이 밝힌 것처럼 감독 자신은 이성애자라서 가진 어떤 편견이 있지나 않은지 궁금하다.
'엄마는 창녀다'에서 굳이 게이 소년의 에피소드가 필요했는지도 역시 다소 의문이 간다.
언젠가 다시 영화제나 극장에서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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