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의 복수예요. 진짜 지옥, 그곳에서 당신 갱생의 첫걸음이 시작될 거예요."
종업식이 있던 날, 중학교 교사인 모리구치(마츠 다카코)는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놀라운 말을 한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경찰에 신고해봐야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죄의 값대로 벌을 받지 않으니만큼 스스로 응징하겠다며, 조금 전 마신 범인의 학교 급식 우유갑에 에이즈에 걸린 딸 마나미(아시다 마나) 아빠의 피를 섞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는 것이다.
차분하고 건조하게 말을 하는 모리구치와 달리 반 아이들은 술렁이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는 구토를 하며 교실을 뛰쳐나간다.
2008년 일본의 도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백'은 그야말로 최근 본 일본 영화중의 문제작이다.
교사인 모리구치 역의 마츠 다카코의 무표정하고 냉정한 모습과 속도감있게 교차편집된 장면들은 공포감을 일으킬 정도다.
모리구치의 시점, 제3자의 처지에 놓인 소녀 미즈키(아이 하시모토)의 시점, 범인 A(니시 유키토)와 B(후지와라 카오루)의 시점 등과 더불어 범인 B의 엄마(키무라 요시노)의 입장에서까지의 이야기를 불균질하게 늘어 놓는 영화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건조하며 냉랭한 느낌의 불안감과 공포감 그리고 관객에게까지 전이되는 타당한(하지만, 충격적인!) 복수의 태도를 담고 있다.
중학교의 선생님인 모리구치 유코는 싱글맘이다.
죽은 아이의 아빠가 에이즈에 걸린 탓에 그와 헤어지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단순 사고사로 사인을 분석했지만, 유코는 이것이 자기의 반 아이들의 계획된 살인임을 알게 되고, 그 범인인 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통해 딸을 죽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만 14세 이하의 범인은 처벌받지 않고 갱생의 기회를 얻게 되기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스스로의 복수를 실행하기로 한다.
여러 개의 시점 중에서 초반으로부터 30분 가량까지 위치한 유코의 고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로서도 탄탄한 짜임새를 갖췄다.
푸르스름한 회색빛이 감도는 화면의 느낌으로 담은 영화는 어린 살인범에게 어떤 '갱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을 불러오기에 차고 넘치는 결말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한다.
중반의 부분에서 다소 속도와 무게감이 덜한 지점도 있지만, 범죄자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더불어 또한 철없다는 이유로 마냥 덮어둘 수도 없는 엄연한 문제에 대한 주제의식을 감각적으로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
어린 학생들의 폭력적인 행동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사회문제화된 이슈인지 오래다.
과연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무지몽매한 철없음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측면, 그들이 자행하는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이 언제까지 답이 없는 문제로 인식되어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일본이든 우리나라든)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얼마 만큼의 고민과 대책을 기울이고 있을까?
유코의 복수는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법이 용서를 해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사적 사법행위에 대한 의지, 그 심경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냐고 묻는 육중한 울림에는 복수는 현실에서 지옥을 구현해내는 것이라는 암울하고 비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연민으로 동정하기에 살인자들의 악의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하고 끔찍한 것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영화의 대사를 나중에 다시 검색해서 읽으면서 그 대사의 내용을 곱씹고 곱씹었다.
"파렴치한 인간이란 나이와 관계없이 파렴치한 거야. '나는 고작 열세 살이잖아요.' 라고 말할 참이니?
나는 지금 일곱 살이건 일흔 살이건 마찬가지인 사악함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부모와 선생이 고루하다고?
너희는 그들의 편견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잖아.
게다가 너희는 어리다는 핑계로 편협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조차 않지.
개성을 존중하라고?
싫은 일은 무작정 회피하는 습관, 약자를 보면 괴롭히는 버릇도 개성이라고 주장하는 거니?
삶이 무의미해서 죽고 싶다고? 왜? 아이돌(Idol)과 사귈 수 없어서?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그렇게 칭얼거리는 만큼 노력한 적은 있니? 너희 엄살은 반으로 꺾어 듣는 편이 건강에 이로워.
걸핏하면 부모 자격이 없다고, 담임교사로서 실격이라고 쉽게 비난하는 너희는 얼마나 네 행동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오늘 당장의 것들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다가올 날들에 실현할 꿈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긴 그 오늘의 해야할 일도 미루고 미루다가 십 년, 이십 년을 허비하는 자들은 평생 '철없고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이겠지.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의 일들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면 참 많은 이야기가 그 자리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억을 두고 여럿이 다른 형태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 기억의 진실과 거짓은 엄연히 존재한다.
유코에게는 끔찍하게 죽어간 딸 마나미의 기억을 곧 그 사실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 진실이 앞으로의 날들 동안에 어떤 기억으로 채워져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고심한 게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없이 많은 타인과 얕은 혹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과연 그러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세우고 있는 것일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장난이지만 장난일 수 없는 태도들과 사회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지 않나?
내가 타인을 타자화하는 태도는 어느 사이엔가 우리 틈에 깊숙이 침투해서 '우리'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자유와 정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반성과 점검이 요구되는 시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사회의 물질문명의 첨단화되는 발전과 달리 'Go Back!'하고 있는 인간성의 야만적인 후퇴를 질타하고 있다.
告白, Confessions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 영화의 주제가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Last Flowers'가 쓰였는데 내용과 참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수차례 반복되는 그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가 아름답게 아팠다.
(아, 우리나라에 언제 올 거야? 톰! -_-..)
** 영화의 등급이 18세 이상으로 되어 있지만, 마음 같아서는 중고생들에게 단체관람 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줄탁동기(崒啄同機)라고는 하나 도무지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도 '줄'할 줄을 모른다.
하긴 따지고 보면 또 어른이 만든 사회가 이 모양인 탓이 크긴 하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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