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kⓘnⓞ。

애정만세: 소외와 단절, 소통하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의 처연한 울음

evol 2011. 5. 10. 02:10

 

 

날개를 꺾인 새의 모습으로 지내던 1995년.

도시의 구석진 곳의 허름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그 후로 나는 늘 내 가슴 한구석에서 흐느끼는 메이(楊貴媚, 양귀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이제, 오랜 세월 우느라 지쳤을 메이에게 손수건을 건네고 등을 두드려 주며 말을 건네고 싶다.

그만 울라고, 어딘가에 너의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메이는 부동산 소개업을 한다.

광고 전단을 신문에 끼우기 위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거리에 집이 비었음을 알리는 입간판을 꺼내 놓는다.

 

시아오강(李康生, 이강생)은 납골당 세일즈맨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직접 사람 앞에서 일하지는 못하고, 집을 돌아다니면서 우편함에 광고 전단지를 뿌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아정(陳昭榮, 진소영)은 길거리 야시장에서 옷을 파는 뜨내기 행상이다.

그다지 삶에 무거운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를 가진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메이와 만나게 되며, 메이가 판매를 맡은 비어 있는 아파트로 가서 하룻밤의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 아파트의 열쇠를 챙긴다.

어느 날, 광고 전단을 돌리다가 문에 꽂힌 열쇠를 우연히 얻게 된 시아오강은 빈 아파트를 드나들던 아정과 마주치게 되는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하나인 차이밍량(蔡明亮) 감독은 이 영화로 199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영화의 중심 키워드는 소통의 부재로부터 오는 고독과 우울함이다.

16년 전, 영화를 처음 보는 때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늘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몹시 가슴이 답답했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차이밍량의 영화가 거의 그렇듯이 영화는 건조한 톤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이 구체적으로 관계짓는 구조도 없고, 촬영기법은 변화가 거의 없는 롱테이크와 롱테이크의 연속이다.

배경음악도 물론 없다.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장치나 구성도 없는 것이 오히려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감독 특유의 화법으로 나타난다.

 

 

 

그 처절한 라스트 씬의 5분도 넘는 롱테이크는 내가 경험한 어떤 영화의 슬픈 장면보다도 내 가슴을 찢고, 식도를 타고 오르는 울음을 삼키느라 무척 힘들게 만들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나는 미동도 할 수 없었고, 늘 그랬다.

 

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제 메이의 흐느낌을 위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메이에게 속삭인다.

"이제 다시 내 가슴속에서는 울지 말아줘.."

 

 

 

차이밍량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보는 것이다.

봐 달라. 아무 말 없이 그냥 봐 달라."

그는 그의 영화를 많은 대중에게 보이기 위해서 관객이 서너 명에 불과한 카페에서도 필름을 돌리는 사람이다.

그 역시 영화로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 갇힌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역설적인 제목의 '애정만세'도 여전히 존재한다.

삶 자체는 여전히 다르지 않다.

'애정만세'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愛情萬歲, Vive L'Amour

감독: 차이밍량

 

과연, 16년 전의 내 삶과 지금의 내 삶은 사뭇 달라졌을까?

......

이제는 사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놓아버린 내가 된 것 같지만 그건 내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는 사람이 없는 탓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어쩌면 내 인생의 자리가 메이의 그 통곡하던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