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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 폭풍우를 뚫고 달빛 무지개로 피어난 사랑의 탈출극

evol 2013. 2. 5. 23:49

 

 

영화가 시작되면 1965년 미국 북동부의 작은 섬인 뉴 펜잔스 아일랜드의 어느 집을 위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훑어가며 그곳에서 사는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거기에는 월트 비숍(빌 머리, Bill Murray)과 로라 비숍(프란시스 맥도먼드, Frances McDormand) 부부와 딸 수지(카라 헤이워드, Kara Hayward)와 세 명의 남동생이 있다. 마치 인형의 집처럼 꾸며진 그곳에서 수지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프렌치 팝 음악을 들으며 지낸다. 어울리지 않는 아이 섀도를 칠한 눈으로 망원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독특한 화면구성과 촬영 기법으로 개성이 강한 영화를 찍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의 이 작품은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가공된 판타지의 느낌과 더불어, 상식적인 이야기의 틀에 박히지 않은 동화적인 분위기로 치장된 느낌이 강해서 선뜻 처음엔 낯설기까지 하다. 영화 속의 어른들은 마치 자라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아이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조숙해서 그 상반된 느낌은 뭔가 기이하게 다가오고, 화면이 담는 곳곳의 풍경은 흡사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처럼 인식될 정도로 색다르게 그려진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열두 살 소년 소녀의 발칙한 도망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열두 살 짜리 아이들에게도 사랑의 감정은 찾아들고, 그들의 풋사랑이 어른들의 눈에서는 그저 치기 어린 시기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겨지겠지만, 그들에겐 그때의 그 감정이 그들 삶의 모든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없는 곳에서 둘만의 왕국을 찾아서 자리 잡고, 달이 아름답게 떠오르는 곳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열두 살 소년 소녀의 탈출로 영화는 시작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소녀 수지는 1년 전에 교회에서 연극 공연을 했는데, 까마귀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보이 스카우트 대원인 샘(자레드 길먼, Jared Gilman)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어졌고, 마침내 1년 후에 사랑의 도피 행각을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위탁 가정에서 지내게 된 고아 샘은 보이 스카우트 캠프에서 말도 없이 빠져나갔고, 수지는 휴대용 레코드플레이어와 동화책 몇 권과 고양이 등을 챙겨서 쪽지를 남겨놓고 가출한다.

 

 

 

열두 살 소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이 영화가 성장 영화의 범주에 한정될 만한 영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어떤 사회적인 의미의 은유나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잊고 있을 그 언젠가의 어릴 적 시간에 대한 귀엽고 앙증맞은 그리고 동시에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동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수지와 샘의 모습에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이것저것 따지고 할 것 없이 그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사랑의 순수한 달리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자기 느낌과 생각에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오롯이 상대에게 다가가는 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의견에 상관없이 자기감정에 충실한 그런 태도의 달리기 말이다.

 

그렇게 사랑의 도망자가 된 그들의 도피 행각은 조용한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수지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캠프의 대장인 워드(에드워드 노턴, Edward Norton)와 경찰서장 샤프(브루스 윌리스, Bruce Willis)를 비롯하여 보이 스카우트의 다른 대원들까지 가세한 탐색대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지와 샘을 찾아낸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절대 용인되거나 허락할 수 없는 불장난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서로 처지는 다르지만, 외톨이처럼 살아가는 두 아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는 어른들이다.

 

 

 

거기서 물러날 수지와 샘이 아니다. 더군다나 샘을 둘러싼 환경은 더 좋지 않다. 위탁 가정의 포기로 고아원에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꽉 막힌 사회 복지사(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의 등장이 이어지는 과정에 수지와 샘은 또래 아이들의 도움으로 다시금 도망간다. 엄청난 태풍이 섬으로 다가오는 기상 악천후의 조건과 더불어 영화는 다시금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전개되며 결말로 향한다. 갈등과 대립하던 아이들 사이의 세계가 화해와 협력의 사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과정이 흐뭇한 위로의 힘을 더해가면서.

 

사랑의 도망자 열두 살 소년 소녀의 이야기에는 어쩌면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졌을 수도 있는 첫사랑에 관한 어슴푸레한 느낌과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을 아쉬워하는 지금 이 순간도, 훗날 회상하면 역시 다시 살 수 없는 기억 저편의 시간이 될 텐데, 어리석게도 귀찮다는 이유로, 불편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충대충 게으름 피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묻기도 한다.

 

 

 

간결한 느낌을 주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붕붕 나는 것처럼 도약하기도 하는 느낌을 주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은 경쾌하면서도 상큼한 그 매력이 넘친다. 그가 구현해내는 모험심 가득한 예술적인 영상들은 빈틈없이 짜인 화면의 구성이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고, 영화의 초반부터 이어지는 인상적인 음악들과 어우러지며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이름만으로도 출중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각자 하나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을 만한 그들이 아이들의 소동극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주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브루스 윌리스와 에드워드 노턴, 빌 머리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물론이고, 냉정한 모습의 틸다 스윈튼과 잠깐 등장하는 하비 키이텔(Harvey Keitel)의 모습도 반갑다.

 

열두 살짜리 소년 소녀인 샘과 수지의 사랑을 보면서 이미 잃었고, 잊었을 순수한 마음을 찾아서, 지금의 때 묻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의 시간에서 탈출을 감행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 위로 가늘게 떨리며 찾아드는 달빛 같은 절실함이, 외롭고 고립된 사람들의 삶을 변화하게 해줄 것만 같다. 영화는 그렇게 모험과 로맨스, 만남과 헤어짐, 갈등과 화해, 탈주와 추격의 고리들이 폭풍우처럼 지나간 자리의 뒤에, 새로운 삶의 시간을 약속하는 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는 느낌을 안겨준다.

 

 

 

Moonrise Kingdom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 아무래도 좀 더 대범하고 성숙한 모습의 소녀 수지가 뭔가 조금 서툴고 어리숙한 샘을 이끄는 측면이 보이는데, 해변에서 키스를 리드하는 당돌한 모습이 참 귀엽고 예쁘게 보였다. 프렌치 키스를 하는 열두 살 소년 소녀의 모습은 딱 그 나이에 맞게끔 그려졌다. 두 어린 배우의 연기력이 무척 훌륭했고, 특히나 두 사람 모두 나이답지 않게 나름의 카리스마를 풍긴다는 게 놀라웠다.

 

** 영화 OST에서 들었던 곡, 1960년대의 샹송 가수 프랑수아 아르디의 '사랑의 시간. Le Temps de l'Amour by Francoise Har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