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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스 크라임: 사랑으로 사람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

evol 2013. 2. 4. 23:45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는 헨리(키아누 리브스, Keanu Reeves)는 멍청할 정도로 순하고 착한 성격의 남자다. 하지만 그런 착한 면이 꼭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에겐 딱히 꿈도 없고, 일에 대한 욕심도 없고,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마저도 열정적이지도 않다. 그야말로 그의 삶도, 그의 사랑도 그저 대충대충 그냥저냥 미적지근하게 흘러갈 뿐이다. 게다가 찌질하게 보일 만큼 소심하고, 아내가 아이를 갖자는 부탁에는 머뭇거리다가도, 친구랍시고 양아치 같은 녀석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내뱉는 부탁에는 거절하지 못한다.

 

소프트볼 경기를 위한 선수단 인원이 부족하니까 대신해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길을 나선 헨리는 친구의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서 친구가 가자는 대로 가고, 기다리라고 해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 일행은 그 사이에 은행을 털러 들어갔다가 도망치게 되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차에 앉아있던 헨리를 발견한 경찰이 그를 체포하면서, 헨리는 억울하게 은행 강도의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헨리라는 사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무기력하고 순응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멍청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도소 안에서 같은 방을 쓴 이름난 사기꾼 맥스(제임스 칸, James Caan)와 가까운 사이가 된 헨리는 형기의 일부를 마치고 가석방되어 나오게 되는데, 의리 때문에 은행 강도로 나섰던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던 중의 한 녀석이 자기 아내와 살림을 차리고 임신까지 한 사실과 마주하면서도,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하기는커녕 세상에! 그들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말까지 전하며 축복해준다.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그는 졸지에 떠돌이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연극배우 줄리(베라 파미가, Vera Farmiga)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도 헨리는 병원을 가자는 줄리의 제안에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면서 그저 카페에서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나온다.

 

그 카페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헨리는 벽에 붙은 오래된 신문기사를 보게 되고, 그 순간 이미 형도 살았으니 진짜로 은행을 터는 일을 저질러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엉뚱한 남자 헨리는 당장 교도소로 달려가 맥스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바깥세상에서의 생활을 포기했던 맥스를 설득해서 가석방으로 풀려나게끔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때부터 은행을 털기 위한 본격적인 계획과 작전을 수립한다. 입만 열면 모두 거짓부렁인 사기꾼 맥스와 도무지 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멍청이 헨리는 과연 그들의 야망을 성공하게 될까?

 

 

 

영화는 범죄를 다루는 내용이지만 스릴러적인 성격은 거의 없다. 헨리라는 캐릭터가 주도하는 범죄에 그런 느낌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는 그런 헨리의 코믹한 성격과 차마 웃지 못할 상황이 서로 뒤섞이며 잔잔한 재미가 차려진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제법 범죄자의 모습처럼 일을 진행해가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의 처지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어설프고 밉지 않아서 웃음이 난다. 물론, 명확한 악역 조연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극에 긴장감을 주진 않는다.

 

영화에 재미를 안겨주는 요소는 단순한 범죄 공모와 작전 진행의 장르 영화적인 재미가 아니라, 헨리를 자동차로 친 줄리가 헨리와 벌이는 독특한 로맨스에서 찾을 수 있다. 곧 막이 오를 안톤 체호프의 연극 '벚꽃 동산'의 여주인공인 줄리는 헨리의 순박함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헨리와 달리 외향적이고 직선적이며 털털한 성격의 줄리는 헨리의 모습에서 여느 사람에게선 보기 어려운 순수함을 본다. 그렇지만, 헨리가 은행을 털 계획이 있음을 털어놓자, 사랑보다는 돈을 중요시하는 사람일 거라고 여기고 어느 정도 마음을 접는다.

 

 

 

헨리와 맥스가 추진하는 은행털이 작전도, 헨리와 줄리가 빚어내는 관계의 실랑이도 참 느슨하지만, 시종일관 흐르는 음악과 함께 지켜보는 그들의 모습은 이상하게 심심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나, 새콤달콤하지도 않은 로맨스 자체보다 헨리와 맥스, 줄리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변화, 특히 헨리가 달라지는 모습 속에 담긴 의미 때문일 것이다. 소심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이 무엇 때문에 변화하고,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면서, 사랑의 의미와 삶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자주 맡았던 키아누 리브스는 더없이 멍청하고 촌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순박함과 순수함이 어떻게 진심 어린 사랑의 힘으로 변모하는지를 소소한 재미와 함께 보여준다. 능구렁이 같은 노인으로 나오는 제임스 칸은 예의 그 노련미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베라 파미가는 특유의 시원하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신경질적인 모습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매력을 발산한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극장에서 만나는 듯한 고전적인 느낌의 이 영화에는 기술적 효과로 꾸며지거나 뒤집고 꼬는 이야기 구조가 주는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평범하다 못해 덜떨어진 것 같은 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넉넉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속도와 흐름으로 그려낸다. 그런 이유로, 어색하고 오글거릴 수도 있는 영화의 결말은 영화 안팎의 관객 모두에게 관심과 지지를 받는 풋풋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사랑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진짜 범죄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Henry's Crime

감독: 말콤 벤빌(Malcolm Venville)

 

* 아, 지긋지긋한 '시작한다!'의 카피. 여기에도 또 붙었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찾아온다!'는 문구까지. 홍보 마케팅을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