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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우리 아빠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하지만 나를 사랑해요!!

evol 2013. 1. 31. 01:42

 

 

12월 23일 오후 2시 28분에 2.1킬로그램의 무게로 태어난 딸 예승(갈소원)의 아빠 용구(류승룡)는 엄마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 육십 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좁은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용구는 비록 삶의 무게는 무겁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버겁지만은 않다. 그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딸 예승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구는 겨우 여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인이다. 그런 용구가 딸과 함께 살아가기에 세상은 노란 풍선이 떠다니는 동화 속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용구는 딸 예승이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노란색 세일러 문 가방을 구경하다가 하나 남은 가방이 다른 아이의 손에 넘어가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가방은 예승이 거라고 말하며 달라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 아이의 아버지는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용구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아이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가져가려는 용구의 모습이 제정신으로 보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않는 용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 아버지의 모습은 비뚤어진 가족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며칠 뒤에 용구 앞에 그 아이가 나타나서 가방을 파는 곳이 있다며 따라오라고 하고, 그렇게 그 아이의 뒤를 따르던 용구 앞에서 그 아이는 느닷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상황을 오인한 목격자의 진술과 그 아이의 아버지가 경찰청장이라는 것이 조합되면서, 용구는 순식간에 아동 유괴 및 강간과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흉악범으로 내몰리며 결국 감옥에 수감된다. 며칠 전에 아이의 아버지인 경찰청장이 휘두른 폭력에 앙싱을 품고 그 아이에게 복수를 했다는 말도 안되는 혐의로 말이다.

 

교도소로 들어간 용구는 거기에서도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집단 폭생을 당하는데, 어느 날 교도소 내의 알력 다툼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 용구가 같은 방의 방장(오달수)을 위기에서 구하게 되고, 무슨 일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는 방장의 제안에 용구는 딸 예승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7번 방'의 수감자들은 용구의 딸 예승이를 교도소로 들여오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결국 용구는 교도소에서 예승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영화는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영화는 용구와 예승이가 겪게 되는 만화 같은 이야기와 성인이 된 예승(박신혜)이가 모의 법정을 통해 용구가 받았던 재판의 문제점을 밝히려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7번 방 동료 수감자들이 엮어내는 웃음과 용구가 자아내는 부성애의 애잔함이 어우러지는, 착하기만 한 사람들의 동화 같은 코미디다. 영화는 오로지 관객을 웃음으로 사로잡은 후에 펑펑 울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신파극이다. 동시에 장애인 아버지의 딸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을 그려낸 판타지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이 영화에는 리얼리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목적은 선 웃음, 후 눈물이라는 '이상한' 한국 대중 영화의 어느 한 장르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과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하는 형식과 극적 개연성은 대충 무시되는 등의 단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승의 엄마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든지, 언뜻 보기에도 몇 개의 영화들에서 대놓고 빌려 온 부분들이 노골적으로 재현된다든지 등의 문제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영화에는 권력에 의해 탄압받는 피의자의 인권 문제라든지, 마땅히 참작되어야 할 장애인에 대한 대우 문제라든지 등을 비롯하여 수사와 재판의 불공정함과 사형제도의 모순성 등에 대해서도 언급되지만, 그런 문제들을 영화의 이야기가 풀어내는 중심에 배치하지는 않는다. 재소자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교도관 간부(정진영)의 존재도 어디까지나 용구와 예승 부녀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에 종속될 뿐이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는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과장되면서 이야기가 지닌 힘은 중반 이후로 점점 약해지고, 그러면서 코미디로서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영화는 아예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만화 같은 판타지로 그려지고 만다.

 

물론 성인이 된 예승이가 모의 법정을 통해서 밝혀나가는 부분에서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적 시각을 보게 되기도 하지만, 이전까지 숱하게 반복된 과장되고 과잉된 코미디들의 단점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지가 않는다. 지금도 반복되는 건달들을 소재로 하는 코미디가 욕설의 웃음과 눈물로 치장되었다면, 이 영화는 더 이상 어떻게 나빠질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장애인 아버지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을 소재로 해서 웃음과 눈물을 덧입히는 방식의 코미디다.

 

 

 

용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나기는 하는데, 그 눈물에서 마땅한 이유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냥 그가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울 따름이다. 한마디로 머리로 생각할 필요 없이, 영화 안에서 용구가 우니까 따라 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라는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서 용구가 처한 상황과 그에게 가해진 그릇된 형벌을 생각하기에 영화는 현실성이 너무 부족한 탓이다.

 

그런 단점에도 이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배우들의 몫이다. 바보 아빠로 변신한 류승룡의 연기와 딸 예승이 역의 갈소원이 보여주는 연기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한 연기다. 더군다나 그 두 사람이 한 장면에서 이뤄내는 모습에는 더욱 커다란 흡인력이 있다. 그리고 '7번 방'의 동료들이 맡은 코믹 조연은 다소 상투적이긴 해도 편안하게 즐길만한 연기와 호흡으로 짜여 있다. 그래도 여전히 배우들의 연기력이 모두 관객을 울리고 말겠다는 지점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게 아쉽다.

 

 

 

감독: 이환경

 

* 왜 우리나라 상업 영화의 코미디는 웃다가 울게 만들어야만 하는 걸까? 대중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일까?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대놓고 울라고 하면서 배우가 영화 안에서 통곡하지 않아도 울 수 있는데 말이다.

 

** 용구가 입고 나오는 이화여대 97학번 무용과 점퍼의 의미가 따로 있을까? 혹시 예승이의 엄마? 뜬금없는 그 장면을 연출한 감독의 의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