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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진실을 못 보는 불통의 편견과 집단 이기주의 광기가 낳은 파국

evol 2013. 1. 25. 01:04

 

 

아내와 이혼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온 루카스(매즈 미켈슨, Mads Mikkelsen)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유치원이지만,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도 있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잘 따르니 일도 어렵지 않으며, 게다가 최근에는 그곳에서 새로운 여자친구도 만나게 되었으니 루카스는 다시 한번 행복한 삶을 계획한다. 인제 지금은 따로 사는 아들 마르쿠스(라세 포겔스트룀, Lasse Fogelstrom)만 곁에 데려오면 걱정이 없는 그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그의 존재와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루카스는 스스럼없이 집안을 드나들며 지내는 친구이자 이웃인 테오(토마스 보 라센, Thomas Bo Larsen)의 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Annika Wedderkopp)와도 가깝게 지내며, 테오 내외 대신에 돌봐주기도 하는 등 딸처럼 대해왔는데, 클라라가 루카스에게 어린아이로서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자, 루카스는 적잖이 당황하면서 클라라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라고 타이르지만, 어린 클라라는 그 일로 마음이 상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거절했다고 생각한 클라라는 오빠의 대화에서 들은 얘기를 본떠서, 유치원 원장에게 루카스의 성기를 봤다고 거짓말을 한다. 클라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원장은 루카스를 결국 경찰에 고발하게 되고, 루카스는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며 결백함을 주장하지만, 친구들과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사귀던 여자친구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다. 일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마을의 모든 사람은 루카스를 변태 성욕자, 성범죄자, 정신병자로 매도한다.

 

부모가 자신을 다소 소홀히 하자 부모의 친구이자 자기가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인 루카스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클라라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루카스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는 신세에 놓이게 된다. 마을의 모든 사람은 루카스를 손가락질하고 외면하다 못해, 그의 아들에게조차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 도무지 진실을 찾기 위해 다른 면을 보지 않는 소통 불가능의 그들의 태도와 집단적 광기는 한 개인의 자존심과 사회적 생명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다.

 

 

 

영화는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절대적일 수 없는 상식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절대적 진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클라라는 어린아이의 차원에서 루카스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에게 사랑의 표현을 했지만 거절당하자, 그 거절에 대해 앙심을 품고 악의적인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다. 문제는 어린아이의 그 거짓말에 대해 일말의 구체적 확인과 의심도 없이 루카스를 단죄했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이 옳다고 믿은 진실은 결국 거짓이었으며, 틀리다고 믿은 거짓은 결국 진실이었다. 그들은 같은 사회구성원인 루카스를 향해서 자신들의 믿음과 판단이 조금도 잘못되었다는 여지를 남기지 않은 채, 타인의 존재와 삶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의 행위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른다. 그것은 한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으로 영화에서 그려지지만, 거대 집단이 소수 집단에 가하는 맹목적인 편견의 양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혹은 타 집단에 대한 선민의식이 갖는 폭력성으로 말이다.

 

 

 

그렇게 진실을 묵살하는 과정은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잔인함으로 묘사된다. 아무런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추악한 인간으로 내몰린 루카스는 그저 죽은 사람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행태는 참으로 끔찍한 살풍경을 연이어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화에 흐르는 공기는 매우 건조하고 냉랭하다. 폭발하는 감정의 충돌과 소용돌이치는 국면의 전환 대신, 하나의 거짓말로 시작된 사건의 시작이 어떻게 해서 한 인간과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해가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과정은 마치 조금씩 산소가 부족해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느낌과 흡사한 체험을 하게 한다.

 

보는 사람이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갑갑해지는 느낌이 들자, 그 일을 직접 겪는 당사자는 어떻겠는가에 생각이 다다른다. 영화는 루카스가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거나 하면서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루카스를 사냥감을 몰듯 옥죄어가는 사람들의 증폭되는 폭력과 그것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루카스의 억울하고 비참한 모습을 담아간다. 물론, 영화 안에서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를 성추행한 사람으로 의심받는 사람에게 극도로 치닫는 분노의 양상이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의 규명보다 근거가 박약한 상태에서의 당위적인 명분만 내세운 그들의 행동은 그들이 믿고 싶은 대로 일을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허점과 오류투성이의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는 도덕적 판단과 법적 판단 사이의 불완전한 차이가 빚어내는 결과에 대한 의문도 갖게 한다. 그런 시련의 날로부터 1년이 지난 후의 루카스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마을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 아마도 법적 판결이 사건의 내용을 어느 정도 해결한 모양인데, 거기에는 앞선 1년 전 자기가 한 거짓말로 루카스가 곤경에 처하고 일이 점점 커지자 클라라가 "루카스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 참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루카스의 마음과 정신과 삶에 그어진 금과 틈이 회복될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에는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다. 루카스의 아들이 성인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에게 주어진 선물은 바로 사냥용 총이다. 루카스의 어릴 적 친구들이 대부분인 마을의 주민들, 그들은 사회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일정한 생물학적 나이가 되면 정말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에 충분한 이성과 의식을 갖추게 되는 걸까?

 

다수의 폭력에 난타당하며 부서져 가는 루카스의 억울함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은 곳의 울분과 그럼에도 쏟아낼 수밖에 없는 불꽃 같은 절규의 모습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루카스의 모습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느 쪽에서도 나의 모습이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 영화가 주는 이야기의 힘과 주제의 의미가 더욱 머리를 파고든다. 루카스는 과연 예전의 자의식과 삶을 되찾게 된 것일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Jagten, The Hunt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Thomas Vinterberg)

 

* 클라라 역의 어린 배우 아니카 베데르코프의 연기에 굉장히 사실적인 느낌이 배어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악마성을 보게 되는 그리 기분 좋지 못한 경험을 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린 배우들의 등장은 마주할 때마다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