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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어느 이상주의자의 이유 있는 저항이자 독립선언

evol 2013. 2. 14. 01:14

 

 

199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던 최해갑(김윤석)은 운동권 학생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체 게바라'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현재의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독립 영화계 감독이지만, 마땅히 생활에 보탬이 되는 일은 거의 하는 게 없다. 그에게는 그를 철저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아내 안봉희(오연수)가 있는데, 아내 역시 대학생 시절에 '안다르크'라고 불릴 정도로 강인한 심성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학원에 다니는 큰딸 민주(한예리)와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아들 나라(백승환)와 아직 어린 귀여운 막내딸 나래(박사랑)가 있다.

 

최해갑이란 인물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처럼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주민등록증을 토막 내 버린 지 오래됐고, 전기세 안에 TV 수신료를 강제로 징수하는 것에 항의하며 공무원 앞에서 텔레비전을 내던져 부수면서 전기세를 내지 않고, 부당한 연금보험 정책에 반대한다며 스스로 국민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다가 결국은 거의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기에 이르는 등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다. 자기 생각에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으며,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는 국가 정책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그는 대상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배우지도 말고 가지지도 말자!'를 가훈이라고 가르치는 아버지를 보는 세 아이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못마땅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며, 때때로 창피하게까지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적어도 다른 아버지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모습에 아직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떤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밑바탕에는 항상 아버지의 편을 들고,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으며 삶을 꾸려가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면서도 인스턴트 음식은 건강에 해롭다며 배식을 해주지 않는 최해갑, 부창부수라고 한술 더 떠서 안봉희는 생업 때문에 아버지가 학교 봉사활동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걱정해봤느냐면서 그런 학교의 정책이 부당하다고 교장선생에게 따지다가, 급기야 교장선생의 비리 의혹을 추궁하기에 이른다. 그런 최해갑을, 그들 부부를 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동네 파출소를 드나드는 것이 매우 익숙한 가장 최해갑, 그에겐 두 명의 공안 요원(주진모, 정문성)이 감시까지 붙은 상황, 결국 세간살이를 거의 압류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 있는 남쪽의 섬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큰딸을 제외한 네 명의 가족은 '남쪽으로' 탈출의 길에 나선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 국가라는 개념,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과 법과 질서, 개인의 존재감 등에 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왜'라는 근원적인 물음, '당연시'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 다름과 차이의 구분 등에 관한 메시지를, 주인공 최해갑을 통해서 되묻고 있는 것이다. 아나키스트(Anarchist)로 그려진 그로부터 내뱉어지는 말들의 핵심은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정부주의자라기보다는, 국가가 행사하는 강권력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하는, 그런 강제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선언이라고 보인다.

 

그런 최해갑의 의식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 표 애국심이 웃길 따름이고, 공정보도와는 담을 쌓은 공영방송이 국민을 상대로 수신료를 강제 징수하는 것이 화가 나며, 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지문 날인제도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보다 힘센 중학생과 맞서 싸우다가 얻어터지고 들어온 아들에게 "싸우든가, 도망치든가!" 둘 중의 하나를 분명히 하라고 말한다. 최해갑은 싸울 수밖에 없어서 싸웠고, 그 결과로 탈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구석구석에서 최해갑이라는 캐릭터가 터뜨려주는 웃음을 기본으로 삼은 코미디 영화다. 언뜻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유로 심각할 거라는 예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풍자와 해학이 깔려 있는 판타지 코미디를 지향한다고 보인다. 물론, 내용으로 삼은 것들이 굉장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실 비판적인 사회성 드라마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체제와 체계를 전복하겠다는 투쟁심이 넘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 나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라는 독립선언과도 같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서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그 웃음의 맛은 매우 씁쓸하다. 마치 돈키호테(Don Quixote)처럼 무모해 보이는 최해갑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던지는 물음과 문제들이 모두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순성을 건드리고 있기에, 좌충우돌 발버둥치다가 결국 피하고 쫓겨가는 모습이, 무척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느껴지면서 가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최해갑이 딛고 선 시간적 지점이 과거의 어느 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그 현재성에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최해갑은 부르짖는다. 당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법과 규율, 가치관과 국가관이 과연 얼마나 당신들이 원하는 삶을 존중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이 과연 얼마나 국민을 위해 쓰이는지에 대해 의심해보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이 쌉쌀한 맛의 코미디는 아주 당당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17대 1'의 싸움이라도 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마땅히 싸우겠다는 태도, 그래서 지게 되면 다시 쫓겨갈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그의 모습이 웃기면서 슬픈 까닭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여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캐릭터, 이 영화의 강점이자 동시에 한계점일 것이다.

 

분명한 영화의 주축이자 거의 유일무이한 위치인 최해갑이라는 캐릭터를 김윤석은 아주 설득력 있게 소화해낸다. 쌍욕을 남발하지 않고,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으면서도, 그의 무심한 듯 보이는 진지함이 캐릭터에 빛을 더한다. 한편, 가녀린 도시 여성 이미지가 강한 오연수가 '안다르크'로 불렸던 안봉희 역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전복적인 이미지를 보는 재미와 더불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진심에는 무한한 신뢰와 헌신이 담겨 있음을, 그리고 그 개인적 사랑이 삶을 거듭함에 따라 아이들이 더해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로 이어진다.

 

 

 

한예리를 비롯하여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껄끄러움 없이 보였고, 영화에 힘을 빼고 더하는 역할을 한 조연들의 연기도 참 좋다.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개의 설정이 다소 빈약하게 보이는 점이 있기도 하다. 최해갑을 사찰하는 공안 요원들의 모습에는 다른 어떤 뚜렷한 그럼직한 사유보다는 단순하게 코믹함을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다 보니, 최해갑이 끌어가는 이야기와 조화롭게 섞인다기보다는 다소 들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점은 반대의 측면에서 큰딸 민주와 학교 선생님(김태훈)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최해갑 가족이 튀어 간 '남쪽'에서부터의 이야기에서도 다소 어색한 흐름이 보이는데, 그 앞선 부분까지 최해갑으로부터 전해지던 이상하고 특이하지만, 충분히 웃을 수 있던 긍정적인 그의 항거가, 조금 더 풍자적인 모습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해갑이 대결하는 대상과 대결의 국면을 표현하는 은유가 생각 외로 단순화하다 보니 그 파급력이 좀 더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말을 접하면서도 무엇인가 확연하게 다가오는 게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의롭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더러 그런 사람을 '피곤한 사람'으로 일컫는다. 꼼꼼하고 정확한 사람에게는 '깐깐하고 쫌스럽다'라고도 말한다.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정작 자기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것도 귀찮아한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사회를 부정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혹은 나서기 좋아해서, 또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라서, 그리고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부당한 세상과 맞서는 사람은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이 포기한 분량을 대신 짊어질 각오를 하고 싸움을 선택한 사람이다.

 

 

 

감독: 임순례

 

* 원작인 소설과 비교한 평들이 적지 않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서 호평을 받을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배우 김윤석도 각색에 참여했다는데, '만덕'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너무 겉도는 점과 소소한 설정의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재미있는 영화다.

 

** 영화를 보다가 초반에 최해갑이 아들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가수 지오디(God)의 노래가 생각났다.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주어진 대로,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 싸울 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 텐가,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나를'(원곡 가사는 우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