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kⓘnⓞ。

밀레니엄-제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우리 사회에도 '밀레니엄'이 필요하다!

evol 2012. 4. 10. 00:10

 

 

전편에서 생매장당할 뻔하고 머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던 리스베트(누미 라파스, Noomi Rapace)는 결국 수술 후에 다시 깨어난다.

하지만 그는 살인미수죄로 법정에 서야 하는 처지로 말미암아 병원에 묶인 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진 리스베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역시 미카엘(미카엘 뉘크비스트, Michael Nyqvist)이다.

사회 깊숙한 곳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조직을 보존해온 '섹션'의 실체를 폭로하고 리스베트를 구하기 위한 그의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조차 얼마나 구조적으로 찌든 병폐가 심각한 상태인지를 신랄하게 드러낸다.

 

앞선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추리와 스릴러의 요소를 갖춘 시리즈 서막의 작품이었고, 2부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가 리스베트 개인사의 의문을 둘러싼 추적과 액션의 면모를 갖춘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었다면, 3부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앞선 두 작품을 관통하는 리스베트와 관련되어 빚어진 문제들이 어떤 해결점을 향해 치닫는 결말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작들과 달리 법정 드라마의 성격을 가진 탓에 다소 정적이고 느릿한 속도감이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린 소녀가 왜 자기 아버지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을 그었는가로부터 시작된 모든 이야기의 순차적 설명을 위한 불가피한 구성이라고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영화가 시리즈의 한 부분으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독립적인 자기 완결성의 재미는 확연히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앞부분인 1부와 2부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3부만 보면서 영화에 몰입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화가 중반 이후부터는 법정 안에서 진행되는 과정을 주요 기둥으로 해서 이어지는 탓으로 해서, 앞선 작품에서의 그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던 리스베트의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 단점과 아쉬움에도 영화는 정중동의 재미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리스베트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유린한 정신과 의사 텔레보리안(안데르스 알봄, Anders Ahlbom)의 추악한 모습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과 온갖 협박과 위협을 딛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맞서는 미카엘을 위시한 '밀레니엄'이라는 언론의 활약이 그런 부분이다.

특히, 정부 고위층과 연결된 사회의 부정부패 세력과 맞서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에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깨달으며 작금의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에 한숨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다.

 

 

 

밀레니엄 3부작 시리즈는 표면적으로는 리스베트라는 한 개인의 근원적인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거대한 사회 권력층의 부정부패 실상을 폭로하고 그 세력의 실체를 밝히는 언론의 빛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리스베트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해킹 능력을 발휘해서 사회악을 고발하고 처단하고자 해도, 거대 권력에 맞서는 한 개인의 투쟁만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온갖 권력과 정보력을 동원한 조직적 사찰과 무자비한 폭력 앞에 좌초되고 말았을 것이다.

 

리스베트가 자기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 깊숙이 뿌리박은 사회악의 세력을 응징할 수 있었던 것은 '밀레니엄'이라는 올곧은 언론의 존재와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것은 곧 스웨덴 사회만을 놓고 보더라도 권력에 조아리는 기존 언론이 얼마나 무능하고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한 것이고,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언론이 바로 서야 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때리고 후려갈겨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 니더만(미키 스프리츠, Micke Spreitz)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지배하는 그릇된 권력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심히 두려웠다.

고통을 모른다는 것은 곧 무서울 게 없다는 얘기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권력이 어디 국민의 고통 따위를 느끼겠는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밀레니엄 시리즈의 결말을 생각해보자면, 리스베트는 여전히 안쓰러운 존재다.

너무나도 크고 선명한 그에게 박힌 상처는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거나 기대지 못한다.

그래도 다시금 리스베트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면 그도 조금씩 닫힌 문을 열어나가지 않을까?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모든 사람에게 발톱을 세우며 살아가진 않으니까 말이다.

 

밀레니엄 시리즈 3부작을 본 후에 드는 생각은, 리스베트처럼 작고 힘없는 사람의 고통에 찬 싸움에 힘이 되는 언론, 사회에 위협이 되는 벌통을 치우는 언론, 미카엘 같은 언론인과 '밀레니엄' 같은 언론이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Luftslottet som sprängdes, Millennium - the film part3: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감독: 다니엘 알프레드슨(Daniel Alfredson)

 

* 3부의 가장 큰 약점은 다시 되짚어봐도 역시 리스베트의 활약이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병원과 법정에 갇혀서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지만 영화적으로 확연히 재미가 반감되었다.

할리우드에서는 3부까지 리메이크를 한다던데 과연 어떤 각색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릴지 궁금하다.

 

** 병원에서 리스베트를 담당하던 의사가 리스베트를 향한 시선이 뭔가 남다르게 느껴졌는데 결국은 뭐 그냥......

영화보다 속으로 잠깐 웃었다.

'리스베트가 그 의사에게 달려들려나?'

1부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하는 사람도 좀 있지 않을까?

나만 그런 건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