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삶과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에는 다양한 상호규정성과 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해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 행복해지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일정한 관습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행태를 보이는 일단의 그룹(=가족)에게는 멸시의 시선이 던져진다.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을 향한 도전은 그렇기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범위여야 성공하기 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사회는 종교와 관습이 곧 법률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극심한 남존여비의 편견이 사회에 일반적이며, 타 문화권과의 교류에서도 굉장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계 독일 여성의 모습을 통해서, 한 개인이 스스로 삶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과 절망의 벽에서 흘리는 분루, 공동체 사회가 한 개인과 가족을 어떻게 압박하며 암묵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가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터키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결혼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우마이(시벨 케킬리, Sibel Kekilli)는 남편의 폭력과 사랑 없는 섹스가 반복되는 불행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자 아들 챔(니잠 쉴러, Nizam Schiller)을 데리고 가족이 있는 독일로 떠난다.
미리 연락도 없이 나타난 우마이를 마주한 가족들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비롯해 오빠와 남동생, 여동생 모두 반겨 마지 않지만, 우마이의 방문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터키로부터 완전히 떠나온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 우려와 갈등의 눈길로 변하고 만다.
자신의 딸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마이의 아버지는 마치 죄인이 된 듯한 자세로 사돈 집에 전화를 걸고, 어머니는 딸의 등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을 보면서도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며, 형제자매들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게 고작이다.
심지어 가족은 챔을 강제로 터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정하기에 이르고, 이를 눈치챈 우마이는 집에서마저 도망치듯 벗어난다.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서 집을 떠난 우마이는 어린 아들과 함께 보호시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일자리를 구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우마이는 홀로서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터키 공동체 사회에는 우마이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로 말미암아 여동생은 파혼의 위기에 놓이기까지 하며, 지참금을 통한 아버지의 해결로 겨우 성사된 결혼식장에서는 축하하러 온 우마이와 챔이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마음속에서는 다시금 가족들과 함께하는 삶을 놓지 않았던 우마이는 이제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떠날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어떻게든 우마이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아버지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고 만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슬람 문화권의 기이한 관습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겠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낡고 그릇된 혁파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속박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우마이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왜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인가!
정녕 우마이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인가?
가끔 외신 뉴스를 통해서 '명예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듣게 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뤄지는 가족에 의한 여성 살인을 뜻하는데, 여성이 강간을 당해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여성을 가족회의를 통해서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돌로 쳐죽이는 야만적 관습이라고 한다.
이슬람교에 대해 문외한이다 보니 코란에 그런 규율이 적혀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들은 어떤 연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이걸 뭐 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여간에 우마이는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 사회로부터 천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기의 삶을 헤쳐나가려고 애쓴다.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물리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행사하려는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고, 아버지로부터 오빠와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가해지는 손찌검도 감수하며, 손수 해간 명절 음식을 들고 찾아가도 문전박대당하면서도 우마이는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가족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결국 가족은 우마이를 외면하고 버리고 만다.
과연 악습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가족의 한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것인가?!
그들이 믿는 신은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참 궁금하다.
엄연한 살인을 묵인하는 신이 세상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 그들을 아직도 여전히 그런 악습의 세습으로 이끄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우마이는 끊임없이 떠남을 반복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왜 떠나야 하는지를 묻는 아들에게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떠나면서는 그 자리에 무엇인가를 남겨야 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해결이 요원하게 보이는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과 참혹한 그들의 실상을 담은 이 영화는 우리에게 몹시 답답한 문제를 내어놓는다.
영화 내내 어딘가로 떠나는 우마이와 챔의 뒷모습에는 안타까움과 가련함의 눈물이 배어 있다.
과연 언제쯤 그들이 평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마련될까?
Die Fremde, When We Leave
감독: 페오 알라닥(Feo Aladag)
* 결말의 충격이 무척 큰 울림으로 남는다.
가엾고 불쌍하며 안타까운 우마이의 절규가 가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시 보이는 우마이와 챔의 뒷모습, 사람의 뒷모습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우마이 역을 맡은 배우 시벨 케킬리는 이 영화로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꽤 인상적인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챔 역의 꼬마 배우, 어쩜 그리 귀여우면서도 딱한 모습을 보이는지, 화면에 나올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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