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몸매, 백치미, 섹스 심볼, 얼굴의 점, 향수 샤넬 넘버 5, 지하철 환풍구에서 하얀 드레스가 올라가는 것을 붙잡는 금발의 여인. 1926년에 태어나서 1962년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 간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노마 진 모턴슨(Norma Jeane Mortenson)이라는 본명이 있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는 마릴린 먼로로 알려졌고 그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고아가 되어 양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의붓아버지로부터 숱한 성폭행을 당하다가 16세에 첫 결혼을 하고 4년 뒤 이혼한 후에, 유명한 미국프로야구선수인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와 결혼하지만, 다시 이혼하고 뒤이어 연극계의 대표적 극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Miller)와도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개인사적으로 참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미국 대통령과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등을 포함해서 무수한 남성과 염문을 뿌리던 스캔들 제조기였고, 결국 약물 과다복용으로(독살설도 있지만!)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영화는 그런 그의 삶에서, 1957년에 개봉한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를 촬영하는 기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23세의 콜린 클라크(에디 레드메인, Eddie Redmayne)가 그 영화의 스태프로 일하게 되면서, 훗날 촬영 현장의 후일담을 담은 두 권의 책을 발간하게 되는데, 영화는 바로 그 책을 바탕으로 해서,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와 마릴린 먼로(미셸 윌리엄스, Michelle Williams)의 영화 촬영에 관한 갈등과 더불어, 콜린 클라크의 주장에 근거한 그와 마릴린 먼로가 일주일 동안의 만남을 통해서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는 비비안 리(줄리아 오몬드, Julia Ormond)와 시빌 손다이크(주디 덴치, Judi Dench) 등의 배우도 등장하는데, 특히 주디 덴치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어느새 키스 신을 찍는 배우로 자라버린 루시 역의 엠마 왓슨(Emma Watson)도 출연한다. 그렇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50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고, 과연 미셸 윌리엄스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그 모습을 연기할 것인지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개인적인 판단에서 갈리는 평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미셸 윌리엄스가 그려낸 마릴린 먼로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닌 묘한 느낌과 매력이 공존하는 인물이었고, 대중 앞에서의 화려함을 즐기는 모습과 그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가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전기영화에서 실재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인물과 외양적으로 얼마나 닮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생각과 마음을 얼마큼 영화의 주제 안에서 구현해내는가의 문제라고 봤을 때,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는 무척 좋았다.
영화는 배우 마릴린 먼로로서의 명암과 자연인 마릴린 먼로로서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연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과 갈등과 함께 여자로서,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삶 또한 그에게는 빛보다는 어둠이 많았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환경을 누리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은 표피에 묻어있는 것만으로는 행복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매혹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늘 두려움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급기야 약물에 의존하던 그의 삶이 참 안쓰러웠다.
콜린 클라크의 눈으로 영화를 보자면,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풋내기의 첫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 영화와 관련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칭 영화광인 콜린은 영화 촬영 현장에 들어서면서 첫눈에 반한 루시와 데이트를 해가고 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난 마릴린 먼로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마는 것이다. 어느 멀쩡한 이성애자 남성이 마릴린 먼로를 대면하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마릴린이 과연 콜린을 사랑했던 것일까? 영화상으로 생각해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마릴린에게는 앞뒤 없이 자신에게 빠져들고 있는 콜린의 모습이 순진함으로 받아들여졌을 테고, 자기의 곁을 잠시 떠난 남편의 자리에서 인간적인 외로움이 가득했을 상황이라고 보이며, 그런 모습은 마릴린 먼로의 남성 편력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그의 모습이 추하거나 나쁘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정녕 마릴린 먼로에게는 마성의 매력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콜린과 마릴린의 이야기는 두 사람 간의 애틋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콜린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보이는 측면이 많다. 더군다나 콜린의 일방적인 주장이기에 그 내용이 전부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점으로 해서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을 다시금 영화 안에서 만나는 것 이상의 의미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사랑에 관한 촌철살인의 대사가 담겨 있다. "첫 사랑은 달콤한 절망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문득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어쩌면 마릴린 먼로는 늘 첫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실현되지 못하는, 절망의 달콤함만을 남기고 사라지고 마는 그런 사랑을, 마릴린은 넘어서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어쩌면 적지 않은 사람의 삶이 그런 것과 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마릴린 먼로의 삶은 첫사랑의 절망을 극복하고 새로이 다져지는 모습으로 향하지 못한 안타까움이란 생각이 든다. 섹시함의 상징인 스타로서의 자신을 극복하고 좋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를 향한 진심 어린 갈망이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은 그저 그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로만 그를 바라보았고, 항상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 속에서 그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야 했으며, 화려함으로 치장된 그의 삶의 이면에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을 것이다.
노마 진 모턴슨으로 태어나서 마릴린 먼로로서 잠들었지만,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었을까? 분명한 것은 마릴린 먼로라는 배우에 대해 수많은 대중은 여전히 그의 외피와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사랑받는다는 것도 능력이다!
My Week with Marilyn
감독: 사이먼 커티스(Simon Curtis)
*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는 한, 한동안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면 미셸 윌리엄스의 모습이 생각날 것 같다. 요절한 배우 히스 레저(Heath Ledger)와 함께 기억되다가 이제는 마릴린 먼로도 더불어!
** 마릴린과 콜린이 작별 인사를 한 영화 마지막 부분의 무대인 '개와 오리'라는 선술집(Pub), 괜히 머리에 박힌다. 그 장면이 사실이라면 그날 거기에 있던 사람 중에 마시던 맥주를 뿜었을 사람이 수두룩했겠지?!
*** 영화가 시작되면 자막에서 '이 이야기는 실화다.'라고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말은 틀린 거 아닌가? 콜린 클라크가 자기 시각에서 쓴 책을 토대로 삼은 이야기를 어떻게 실화라고 할 수 있는 거지? 하여간 뭐 실화든 아니든 영화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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