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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백 페이지: 허망한 삶의 뒤안길에서 쏟아놓는 쓰라린 후회

evol 2012. 3. 19. 22:05

 

 

일본의 1960년대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지닌 청년 학생들의 이상이 뜨겁게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당시 일본의 학생운동 조직 중 하나였던 전공투(전학공투회의)는 1969년에 도쿄대학교의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경찰 기동대의 투입으로 강제해산되면서 일단락되지만, 도쿄대학교의 전공투 운동 이후로 각지로 그 투쟁의 불길은 퍼져 나갔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주간지 신입 기자인 사와다(츠마부키 사토시, 妻夫木聡)는 자신의 학창 시절에 전공투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에 일종의 부채감을 지니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은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권유로 전공투 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혁명전사가 되고자 한다는 우메야마(마츠야마 켄이치, 松山ケンイチ)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빚어진다.

 

 

 

사와다와 우메야마의 모습에는 실상, 1960년대 당시의 운동 세력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독이 40여 년 전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의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세계를 변혁하겠다는 이상을 가진 우메야마라는 인물은 한마디로 말만 번지르르하고 도덕적으로도 불순한 사이비 투사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을 실현하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순수한 운동가의 모습이 아닌 우메야마에서는 오히려 변절자 혹은 사기꾼의 모습이 맞겠다.

 

사와다의 모습에는 진실을 보려 하는 기자의 모습이 아니라,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진실이기를 바라는 자기 욕망이 담겨 있다. 우메야마의 정체에 의혹과 의구심이 많음에도 차마 그 모습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무엇인가 감춰진 진실이 따로 있기를 바라는 사와다를 보면서, 결국 사와다는 자신이 취재하는 대상에게 자기의 지난날의 모습을 떨쳐버리려는 어리석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치기 어린 청춘의 허상, 혹은 어떤 면에서 실상을 마주하며 머릿속에 한가득 씁쓸함이 들어차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960년대 말엽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전공투가 뭔지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영화의 분위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영화에 담겨 있는 주제는 꼭 그것과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된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는 주체가 되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과 더불어, '진짜'가 되고 싶지만 '진짜'가 되지 못했던 사람의 허망한 욕망이 어떻게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가를 비추면서,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들춰보는 자기 삶의 이면을 마주하는 서글픈 후회와 뒤늦은 성찰을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짜맞출 수 없는 청춘의 조각난 시간들. 그 안에는 열정과 순수의 편린도 있을 테고, 비겁과 졸렬함의 파편도 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 지점에서 사와다가 선술집 구석에서 한없이 흐느끼던 이유는 아마 그러한 것에 대한 회한일 것이다. 그 누구라도, 어떤 삶이라도 자기의 인생의 지나간 한 페이지를 다시 꺼내 들고 마주하는 모습은 비슷하지 않을까?

 

 

 

자기의 등 뒤로 지나간 삶을 돌아볼 때, 자기의 삶 중에 과연 얼마 만큼의 모습이 진실함이라고 우리는 생각할까? 확신한다고 믿었던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있고,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금 어느 만큼의 깊이로 담겨 있을까? 그 해답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의 웃음과 눈물, 사랑과 미움, 분노와 증오가 여전히 자신에게 유효한 것이냐는 질문 앞에 우린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위선과 허영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데도 거기에 거짓과 허세로 포장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머리와 가슴이 텅 비어있는데도 거기에 허풍과 위장으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 모습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런 삶의 시간을 살던 이에게는 어느 하루 아침에 소녀에서 할머니로 변하는 악몽처럼 부질없는 후회의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 사람의 삶의 끝날에서야 후회의 눈물이 폭풍처럼 몰려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깨달았다고 해도 다시 까먹으면 소용없듯이, 무언가를 바꾸고 변화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실천이다. 사와다에게도 우메야마에게도 필요했던 것은 머릿속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천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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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山下敦弘)

 

* 영화 제목은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제목에서 인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