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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마틴 스콜세지 판 시네마 천국

evol 2012. 3. 14. 22:12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탄성이 나오는 영상이 펼쳐진다.

3D영화의 기술력에 놀라서가 아니라, 그 기술력이 그렇게 예술적인 장면을 이끌어낸다는 것에 놀라게 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3D영화의 기술력은 영화의 오락성과 대중적 상업성을 위해 제작되어왔는데 여기서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관객을 감탄하게 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오프닝 시퀀스만 따로 떼어서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세기 전인 1931년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삼고 있다.

화재로 아버지(주드 로, Jude Law)를 잃고 삼촌 클로드(레이 윈스턴, Ray Winstone)와 함께 지내게 된 휴고(아사 버터필드, Asa Butterfield)는 기차역의 시계탑에서 기거하며 시계탑을 관리하는 삼촌의 일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휴고는 아버지가 박물관에서 발견해서 선물로 준 고장 난 로봇인형을 애지중지 아끼는데, 그것을 수리하기 위한 부품을 장난감 가게에서 훔쳐오다가, 마침내 가게 주인인 조르주(벤 킹슬리, Ben Kingsley)에게 발각되어 가지고 있던 여러 부품과 로봇인형의 설계도가 그려진 중요한 수첩을 뺏기고 만다.

 

 

 

수첩을 돌려받기 위해서 조르주의 집까지 따라가지만 결국 실패한 휴고는 조르주의 손녀인 이자벨(클로이 모레츠, Chloe Grace Moretz)과 마주하게 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 둘은 친해지게 되고 그 후로 감춰졌던 이야기를 알아가게 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영화 역사의 시작 지점에 한 획을 그은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res)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현재의 거장인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이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바치는 존경과 헌사이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마음을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역사를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귀스트 뤼미에르(Auguste Lumiere)와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ere) 형제가 감독한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à La Ciotat,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과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A Trip to the Moon)'이 영화에 등장한다.

그 당시 '열차의 도착'을 접한 관객은 스크린 안으로 기차가 돌진해 들어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피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의 무대를 프랑스 파리로 삼고, 3D로 영화를 제작한 이유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연령대에 큰 상관없이 전 연령대가 즐길만한 이른바 '가족 영화'의 테두리로 묶일 수 있는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아마도 신이 나는 모험의 세계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가족 군들은 실망할 수도 있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세기 전에 가까운 시대에 영화가 발명되던 그 시점을 다루고 있고, 무성 영화로 출발한 당시의 영화가 오늘날의 영화에 어떻게 뿌리가 되고 영양분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영화에 관한 영화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휴고와 이자벨이 기차역을 주 무대로 펼치는 아기자기한 모험담 또한 분명한 이야기의 한 줄기이고 보면, 오락 영화로서 영화를 즐기는 것에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꿈같은 이야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끔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단순한 상품이나 산업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감수성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꿈틀대는 것을 느낀 대목은 아무래도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조르주 역을 맡은 벤 킹슬리의 얼굴과 실제 조르주 멜리에스의 모습이 담긴 영화가 서로 겹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마치 근 1세기 전의 관객이 스크린의 저쪽에서 앞쪽으로 달려오는 열차를 볼 때, 혹은 필름의 편집을 통해서 마술처럼 사람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장면에서 느끼던 놀라움과 비슷한 성분의 감동이라고 생각해본다.

 

평생 아픔으로 간직한 채로 숨겨온 조르주의 개인사가 수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다는 부분을 생각해보면서 책 한 권, 그림 한 점, 음악 한 곡, 영화 한 편으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겹쳐서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에서 조르주 멜리에스는 이런 말을 한다.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결국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 있을까?

 

 

 

그것은 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들이 사람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빗대어 말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긍정과 희망을 담은 영화는 그 나름대로 우리의 삶에 위로가 될 것이며, 부정과 절망을 담은 영화 또한 그 나름대로 우리의 삶에 자극이 되어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떠올리며 새로운 계획과 각오 따위의 생각을 하게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행위, 그게 영화를 보는 아주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참 의미심장한 말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형제자매도 없던 휴고가 외롭고 버거운 삶 속에서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않은 것은 로봇인형을 고쳐보겠다는 것에 건 꿈과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꿈과 희망의 근저에 깔린 것은 지난날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에 목표로 삼았던 일을 완성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그 일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세기 전의 영화가 그러했듯이 우리가 지금 시대에 마주하고 있는 영화의 모습도 빠르게는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기술력에 근거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시대에서 1세기 전의 영화를 바라보며 조악한 기술력과 단순한 촬영, 편집 기법에도 감동을 느끼듯이, 미래의 사람들도 지금의 영화를 보며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전해 받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영화를 만드는 기술력의 한계나 사람이 사는 세상의 비관적인 현실이 일종의 자물쇠라고 친다면, 이 세상 모든 자물쇠에는 반드시 그 자물쇠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열쇠 또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열쇠를 만일 잃어버렸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나가는 과정일 것이며, 혹시라도 그 열쇠를 누군가가 파괴했다면 그 열쇠를 다시금 만들어가는 과정이 우리 앞에 놓인 삶을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ugo

감독: 마틴 스콜시지

 

* 영화에서 휴고의 모험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맡았던 사챠 바론 코헨(Sacha Baron Cohen)은 아주 독특하고 코믹한 느낌으로 영화 내용에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상대적으로 극 중에서 소외된 조연 역할이다 보니 캐릭터가 조금 단순한 면은 있었지만, 그래서 더 또렷해 보이기도 했다.

 

** 휴고의 아버지 역으로 잠깐 등장한 주드 로와 휴고의 모습을 보며 언뜻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생각났다.

거의 카메오 수준의 출연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후반부에는 마틴 스콜시지 감독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