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1889년 1월 3일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말에게 채찍질하던 마부를 말리려다가 졸도한 후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고 여생을 살게 되었다는 해설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불안해 보이고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느낌으로 쉴 새 없이 달리는 말과 마부(야노스 델시, Janos Derzsi)가 등장한다.화면 가득 담긴 그 장면에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음산함이 뿜어져 나오고, 다양한 카메라의 각도에서는 꿈틀대는 힘이 느껴진다.
2011년에 열린 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놓쳤던 작품 '토리노의 말'을 보게 되었다.
롱 테이크로 이뤄진 첫 장면부터 압도당하기 시작하면서!
감독의 전작을 본 적이 없는데, 좋아하는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감독과 짐 자무시(Jim Jarmusch) 감독으로부터 찬사를 받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기대감 또한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런 느낌의 영화일 줄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영화는 마부와 그의 딸(에리카 보크, Erika Bok)이 황량한 들판의 외딴 집에서 겪는 6일간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상황은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들듯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온 세상을 휩쓸어버릴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바람이 몰아치고, 힘차게 달리던 말은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으며, 세상과 신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으며 동전 몇 닢을 던지면서 술을 사가는 사람의 방문과 느닷없는 집시들의 출현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집시들이 주고 간 성경을 읽는 딸의 모습 등이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카메라의 시선에 매일 똑같이 포착되는 모습은 부녀의 지루할 만큼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오른쪽 팔이 불편한 아버지의 옷을 갈아 입히는 딸, 서로 간에 대화라고는 밥 먹으라는 것 정도, 식탁에 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먹는 음식이라고는 고작 감자 한 알씩, 그리고 물끄러미 간혹 창 밖을 응시하는 그런 모습들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판에 박힌 듯한 그 모습에서 아무런 삶의 희망도 없는 극한의 절망감이 느껴진다.
물론, 날이 지날수록 그 모습을 담은 화면의 각도와 구도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말이다.
4일째 되는 날에는 먹을 물을 긷던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급기야 마부는 딸에게 짐을 싸라고 말한다.
수레에 살림살이를 싣고, 물과 먹이조차 먹지 않아 기력이 쇠진한 말을 이끌고 두 사람은 집을 떠난다.
시야를 확보하기에도 어려울만큼 거세게 부는 폭풍 속을 뚫고 언덕 너머까지 힘겨운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엔 기름이 차있는데도 등에 불이 붙질 않는 일마저 벌어진다.
두 사람 주위로 짙은 암흑의 기운이 밀려드는 것이 느껴진다.
마침내 6일째 되는 날에는 장작불마저 사그라들어 날 감자를 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고, 마부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왼손으로 감자의 껍질을 긁어서 벗기고 한 입 베어물어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딸은 허망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 그 당혹스럽고 전율을 일으키는 결말.
영화는 그렇게 시간을 거듭할수록 부녀가 처한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들어가고, 그 절망의 상황은 점차 소멸의 끝으로 치닫는다.
그러한 절망과 소멸의 과정을 보여주는 과정에 두 사람의 일상이 담겨 있다.
살기 위해서 하는 아주 최소한의 것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우물로 물을 길러 가는 모습과 조금의 즐거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존을 위해 우걱우걱 입안으로 감자를 밀어 넣는 모습은 그야말로 비참하고 남루한 삶 그 자체다.
아무도 그들의 삶을 그 지옥 같은 상황으로부터 꺼내주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벗어나려고 해도 집 바깥의 세상은 거칠고 험난하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고통과 고난의 공간이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안타깝고 서글프다 못해 우울한 상황이 혹시 나의 삶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다.
지겹고 지루하게 반복의 일상을 보내야만 겨우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의 일상.
하루하루 지날수록 부녀의 삶에서는 무엇인가가 더해지고 보태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없어졌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도대체 창 밖을 응시하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낙엽과 모래와 먼지만이 바람에 떠다니는 황량한 풍경인데 딱히 소일거리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런데 거기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TV를 켜놓고 일상을 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겹쳐 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단어들을 늘어놓자면 이런 것들이다.
무념, 무감, 권태, 고통, 허무, 슬픔, 고독, 우울, 절망 그리고, 점차 죽음으로 향하는 소멸의 성분들이다.
그런데, 벗어나려고 길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그 언덕 너머의 풍경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스스로 포기한 것일까? 혹시 누군가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아무런 탈출의 가능성도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도 없는 그들의 삶을 감독은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로 표현한다.
어쩌면 그게 죽음이나 소멸이 아니라 그 상태로 그들의 삶을 가둬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너무도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온몸을 휘감는다.
A Torinói ló, The Turin Horse
감독: 벨라 타르(Bela Tarr)
* 흑백으로 찍은 화면이 주는 질감이라고 해서 그저 낡고 오래된 듯하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흑과 백이 비단 흑과 백 두 가지의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어둠과 흐릿함도 잘 표현된 흑백영화다.
** 거의 유일한 장면이 아닌가 기억되는데 집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딸의 모습을 집 밖에서 담은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소름 끼치는 기분과 불쾌할 정도로 공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 부녀가 수레와 말을 이끌고 언덕을 넘어갈 때 앙상한 가지만 남은 커다란 나무가 있던 그 풍경, 인상적이었다.
포스터에도 언급됐던 어느 감독의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영화。kⓘ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한동안 미셸 윌리엄스로 기억될 마릴린 먼로 (0) | 2012.03.16 |
---|---|
휴고: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마틴 스콜세지 판 시네마 천국 (0) | 2012.03.14 |
움: 욕망을 잉태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0) | 2012.03.06 |
아티스트: 감동을 주는 예술로서 영화의 존재감이 필요한 이유 (0) | 2012.03.02 |
더 그레이: 생존을 향한 투쟁, 의지가 꺾이는 순간 쓰러진다! (0)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