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만큼 회색빛으로 물든 바닷가의 어느 마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도는 한적한 그곳에서 9살 소녀 레베카(루비 오 피, Ruby O. Fee)와 10살 소년 토마스(트리스탄 크리스토퍼, Tristan Christopher)가 만나게 된다. 레베카의 묘한 눈빛과 토마스의 장난기 어린 모습이 교차하는 속에서 두 소년 소녀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일본 도쿄로 떠났던 레베카(에바 그린, Eva Green)가 12년 만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다.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레베카는 토마스(맷 스미스, Matt Smith)를 찾고 마침내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여자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레베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레베카 또한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을 뛰어넘어 어린 시절에 가졌던 애틋한 감정으로부터 이내 사랑에 빠지는 레베카와 토마스는 서로에게 쉽게 젖어든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레베카의 눈앞에서 토마스가 죽고 만다. 차마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슬퍼하는 레베카. 레베카는 죽은 토마스의 체세포를 통해서 토마스의 복제인간을 낳을 것을 마음먹는다. 시간이 지나 아이는 태어나고 토마스는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어김없이 어린 시절에 레베카가 만났던 그 소년 토마스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토마스. 마음만 먹으면 복제인간의 출산이 자유로운 시대지만, 사람들은 복제인간에 대한 편견 또한 갖기 시작한다. 청년으로 성장한 토마스는 어느새 여자친구가 생기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레베카는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과연 레베카의 시선에 자기가 낳은 토마스는 예전에 사랑했던 그 토마스일까? 아니면 자식으로 생각되는 토마스일까?
영화의 무대가 되는 바닷가와 그 바닷가에 있는 집이 담긴 풍경은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다. 햇빛이라고는 좀처럼 들지 않는 날씨, 음습하고 어두운 공기, 마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담겨 있다. 게다가 영화에는 복제인간의 잉태와 출산 그리고, 영락없는 근친상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파격적인 소재임이 틀림없고 불편한 설정인 것 또한 분명하다.
영화는 지극히 정적이고 고요하다. 바람 소리가 아주 세세하고 선명하게 들릴 만큼 주위의 소리가 잘 들린다. 정작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에 반해 그리 말이 많지 않다. 주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보이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사유를 돕기 위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언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영화 안에 장치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 움(Womb). 제목도 매우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말 그대로 자궁을 의미한다. 한국영화의 제목으로 쓰여서 '자궁'이라고 명명되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봤다. 언뜻 많지 않은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하여간, 영화를 보는 동안 레베카의 머릿속이 내내 궁금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결말의 직전까지 한껏 부풀었던 긴장감이 막판에 너무 단도직입적인 방법으로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레베카 역의 에바 그린이 뿜어내는 기묘한 매력이 시종일관 발휘된다는 점은 적확한 캐스팅의 장점이 분명하지만, 레베카의 뱃속에서 나온 토미(토마스의 애칭)의 자기 정체성 혼란이 레베카와의 폭발 지점에서 그려진 방법은 다소 맥빠지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아무튼, 영화는 복제인간에 관련한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영화이고, 소설적이기보다는 시적인 느낌, 또한 연극의 무대를 영화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가진 독특한 느낌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Womb
감독: 베네덱 플리고프(Benedek Fliegauf)
* 복제된 동물에 대한 소식은 어제오늘의 화젯거리가 아니다. 공인된 뉴스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에서 이미 인간에 대한 복제가 실행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 이 문제는 점점 여러 방면에서 문제가 더욱 불거질 거리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 보면 볼수록 에바 그린의 기묘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는 이제 지우기가 참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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