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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허망한 웃음과 허탈한 분노가 뒤섞이는 삶, 그래도 훈풍은 분다

evol 2012. 2. 27. 15:40

 

 

갑작스러운 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내, 이윽고 이어지는 의사의 뇌사 판정에 남편인 맷 킹(조지 클루니, George Clooney)는 두 딸을 양육하는 문제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아내의 부재를 통감하며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작은딸인 스코티(아마라 밀러, Amara Miller)가 친구와의 문제로 말미암아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겨우 진정시킨 맷은 사실상 예정된 죽음의 절차에 놓인 아내의 소식을 알려야 하겠기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큰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 Shailene Woodley)를 만나러 가는데 큰딸 또한 숙소를 빠져나가서 술에 취해 있는 등 문제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뿐이 아니다.

큰딸로부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 맷.

그동안 가사와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아내에게 맡겨 놓고 가정을 소홀히 한 탓에 자식들과의 소통도 그리 원활하지 못했고, 아내와의 거리도 꽤 멀어진 것을 깨달으며 다시금 가족과의 관계에 집중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느닷없이 사고를 당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아내의 모습도 당황스러운데, 그동안 자기 몰래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영화는 하와이라는 곳에 산다고 해서 그곳이 천국 그 자체인 것은 아니라는 맷의 해설로 시작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천국처럼 아무런 슬픔과 고민도 없이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 찬 곳은 없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물질적 토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고민과 고통이 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의 문제에 있어서 누구나 어려움과 고됨이 배어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시작부터 늘어놓는 문제의 무게들이 만만치 않음으로 말미암아 상당히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가 택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그와는 상당히 반대편의 분위기로 그려지고 있다.

슬프고 우울한 상황인데도 축 처지거나 가라앉는 분위기만으로 그려지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일부러 끼워 넣지도 않으면서, 각 인물의 감정 표현이 인물의 자기 안에서 걸러지고 소화되는 방식으로 담겨 있다.

 

 

 

물론 그런 측면과는 조금은 다르게 영화에 깃든 재미와 매력은 맷의 모습에서 전해지는 소소한 코믹함이다.

아버지로서 또는 남편으로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는 뭔가 아이 같은 유치함과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배어 있다.

특히나 아내가 바람을 피운 상대를 큰딸과 함께 찾아 나서고 결국 그와 맞닥뜨리게 된 상황에서 빚어지는 그림에는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고 조율해야 한다는 이성과 더불어 그 건너편에 있는 감정의 폭발이 한데 엉키며 잔잔한 웃음을 안겨준다.

 

아내의 배신으로부터 분노와 서글픔을 느끼는 맷의 모습에는 다소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지만 두 딸과 함께 아내가 만나던 사람인 브라이언 스피어(매튜 릴라드, Matthew Lillard)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는 조금씩 경직되고 소원했던 가족의 관계에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 한몫을 하는 인물이 바로 큰딸의 친구인 시드(닉 크라우스, Nick Krause)인데, 눈치도 없고 생각도 좀 모자란 듯한 그의 모습으로 처음엔 한심스럽게 생각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그의 진심에서는 또한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맷이 아내의 바람피운 상대를 찾아나선 길의 끝은 결국 아내를 떠나보내는 준비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 말미에 이르기까지 그는 분노와 슬픔을 거쳐 혼자라는 고독감을 지나, 그동안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정리를 하며 아내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이성적인 대응을 하려고 생각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안에 흐르는 감정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그 문제를 푸는 것에서 몹시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받아들이기 싫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는 과정에는 직접 그 문제와 마주해서 받아들일 것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식도 없는 사실상 죽음의 상태에 놓인 아내에게 인사를 하는 맷은 눈물과 절규로 자기의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꺼내 놓으며 잘가라고, 사랑했다고 말한다.

또한 동시에 자기의 고통과 슬픔에도 작별을 고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중한 것을 대하는 것에서 늘 잃고서야 후회와 함께 깨닫곤 한다.

그런 깨달음 덕이었을까?

영화에 담긴 또 하나의 이야기인 하와이 사람의 후예로서 땅을 파는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해야 하는 맷의 생각과 태도 또한 달라진다.

경제적인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성찰하게 되는 맷은 자기의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영화에는 그의 가치관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잔잔하면서도 단호한 어법으로 담겨 있다.

 

삶에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공존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뜻하지 않게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드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가족의 의미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는 영화 자체가 꽉 차 있는 느낌보다, 다소의 공간이 있음으로써 관객이 그 자리에서 함께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삶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끝나는가는 결국 자기의 선택이 아니다.

다만 어떤 과정으로 진행할 것인지에는 자기의 선택이 개입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삶은 끊임없는 계획과 점검과 정리와 실천의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영화를 본 후에 새삼 깨닫는다.

 

 

 

The Descendants

감독: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또한 매력적이다.

어쩌면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참 부럽다.

다소 찌질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특히 담장 너머로 얼굴만 빼꼼히 보이는 장면에서는 귀엽기까지 하다.

 

** 영화를 본 후에 종종 느끼는 것인데 영화 속 공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추운 탓이라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와이 바닷가의 모래밭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위험한 모터보트 타기는 할 생각이 없다. (응?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