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나서 포커 게임을 하는 날이지만 더그 라일리(제임스 갠돌피니, James Gandolfini)는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실은 비비안(에이사 데이비스, Eisa Davis)이 일하는 식당에서 와플을 먹고 함께 밤을 보낸 후에 귀가하는 것이다.
종종 잠을 못 이루는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차고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울기도 한다.
한편, 더그의 아내 로이스(멜리사 레오, Melissa Leo)는 머리 손질도 미용사를 집으로 불러서 할 만큼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든가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다.
그저 조용히 집안에 틀어박힌 채로 책을 읽든가 그림을 그리며 그렇게 세월의 흐름에 자신을 떠맡긴 채로 흘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더그와 로이스는 거의 대화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지내는데 그렇게 된 것은 딸을 열다섯 살에 교통사고로 잃은 뒤인 8년 전부터다.
영화는 그런 허상뿐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면 살던 더그가 뉴 올리언즈로 출장을 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이야기한다.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는 술집으로 들어간 더그는 스트리퍼가 있는 무대에는 관심도 없이 수첩을 꺼내놓고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한다. 때로는 고요함이 흐르는 조용한 장소에서보다 소음이 커다란 곳에서 정신집중이 더 잘되기도 하니 이해가 간다.
그렇게 외로움이 잔뜩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더그 앞에 스트리퍼인 말로리(크리스틴 스튜어트, Kristen Stewart)가 발을 내민다.
영화는 그렇게 딸을 잃어버린 부부의 삶과 어린 시절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말로리의 삶이 서로 만나게 되면서 진행된다.
딸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고 살아가는 로이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일이 점점 힘들고 지쳐가는 더그,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발톱을 세운 새끼 고양이마냥 살아가는 말로리, 영화는 바로 그런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던 비비안마저 세상을 떠나보낸 더그는 겨우 열여섯 살에 스트리퍼로 살아가는 말로리에게서 딸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지갑에 지니고 다니며 꺼내 보곤 하던 딸의 사진을 본 더그는 아내에게 당분간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더그는 말로리의 집 곳곳을 수리해주고 새 침대를 사주며 마치 아빠가 딸에게 하듯이 돌봐준다.
처음엔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 더그의 모습을 미심쩍어하던 말로리도 조금씩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한편, 급기야 남편이 자신에게 영영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 로이스는 짐을 챙겨서 직접 차를 몰고 먼 길을 나선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간직하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이제 겨우 등 뒤로 떠나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로이스와 그렇게 자기를 만나러 달려와 준 아내를 포옹하며 아름답다고 말을 건네는 더그의 모습에는 30년의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정이 엿보였다.
같은 이유로 상처받았지만, 상처라는 게 그저 덮어두고 모르는척하며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 것인데, 두 사람의 삶은 다른 방식이었지만 결국엔 똑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채로 그 상처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온 셈이다.
영화는 아무 담담하고 차분하게 과거에 받은 상처를 현재에까지 고스란히 지니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설픈 치유법을 제시하지도 않고, 섣불리 치유된 것처럼 환한 웃음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감정을 과잉 노출하지도 않고, 감동의 눈물을 유발하기 위한 어떠한 설정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다소 건조한 느낌으로 세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이 충돌하고 부딪히거나, 또는 자연스럽게 회복되거나(더그와 로이스의 경우), 누구의 이끌림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가족'은 더 이상 혈연으로 이어지는 관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다양한 조합처럼 가족이라는 개념도 다양한 조합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세 사람이 얼싸안으며 "우린 이제 가족이야."라고 말했다면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에서 뜬금없는 결말이었을 것 같다.
가족이라는 개념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도,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오히려 훨씬 수긍이 가는 이야기로 맺어졌다고 본다.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울타리 안에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상처가 난 과거의 시간은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고, 성장한 자식은 스스로 생각과 의지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영화는 그렇게 아주 적절한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며 영화의 내용을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쉬운 화법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머리와 가슴에 남는 여운마저 쉽게 증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최근 들어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의 형태를 담은 영화가 많아진(그런 영화를 내가 많이 본?) 것 같다.
살아가면서 어디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우리 사회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에 대해서 시스템의 범위 안에서 치유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며, 그러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의무감과 책임감도 부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리같은 아이들을 떠안아 돌보는 정도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의 시스템에 도대체 무슨 권위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긴, 성희롱을 하는 구캐의원이 버젓이 존재하는 사회인데 뭔......
저런 청소년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만 않아 줘도 고맙긴 하겠다.
Welcome to the Rileys
감독: 제이크 스콧(Jake Scott)
* 중년 아저씨의 면모는 골고루 갖춘 제임스 갠돌피니의 후덕한 모습, 신경쇠약증 환자 같은 멜리사 레오의 모습이 묘하게 어울린다. 절제된 내면의 연기를 보여주는 두 배우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 소녀의 감수성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역할을 잘 소화한 걸 보면 앞으로 더 성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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