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카메라와 사진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오늘날이다. 디지털카메라는 물론이고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매일 주위의 사물과 일상과 사건 심지어 자신을 찍어댄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종종 어떤 사진(동영상을 포함해서)은 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찍음으로써 숨겨질 수도 있는 사실의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모르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보도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그렉 마리노비치(라이언 필립, Ryan Phillippe)와 주앙 실바(닐스 반 자스벨드, Neels Van Jaarsveld)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며, 뱅뱅클럽이라는 이름은 그들과 함께 동료로서 활동했던 또 다른 퓰리처상 수상자인 케빈 카터(테일러 키취, Taylor Kitsch)와 켄 오스터브룩(프랭크 라우텐바흐, Frank Rautenbach) 등 네 명의 보도전문 사진기자를 지칭하는 별명이다.
영화의 내용은 무력 충돌로 치닫고 있는 1990년대 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도 사진기자가 지녀야 할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현장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 심지어 처참하게 죽어가고 죽은 시신을 필름에 담아낸다. 그들의 직업은 보도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어서 언론사에 돈을 파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고 밀착된 현장감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기후의 악조건이나 참극의 현장에 기꺼이 뛰어든다.
영화는 여기에서 그들의 직업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내전 상황에서 참혹한 살해 현장을 담은 그렉의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자, 남아공 당국은 사진의 내용이 범죄 현장을 담고 있다면서 사진의 인물을 체포하는 것에 협조하라고 다그치지만, 그렇게 되면 기자로서의 중립성을 잃게 되고, 당연히 이후로는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에 그렉은 그 명령에 거부한다. 다행히도 그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되자 자연히 그렉이 처한 문제는 해결되지만, 그렉은 자기의 직업에 회의감을 갖게 된다.
한편, 마약 문제로 계약된 언론사에서 해고당한 케빈 카터가 기아 문제가 심각한 수단에서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되는데, 그 사진은 굶주림에 지친 어린아이가 배고픔에 기운을 잃고 쓰러져가고 있는 것을 먹잇감으로 노려보고 있는 독수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수상 소감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케빈 카터에게 가해진 질문이다. '그래서 그 소녀는 어떻게 되었는가?, 당신은 그 소녀를 구했는가?, 아니면 그냥 죽게끔 내버려 두었는가?'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직업정신의 의미와 직업윤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상으로만 보자면 그들은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정의감과 왜곡된 사실을 바로 알리겠다는 사명감보다는 돈과 명예를 더 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직업 자체 때문인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갈등의 무게는 엄청난 것임을 보여준다. 피를 흘리며 자기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그들에게 과연 인간적인 윤리 문제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은 담아야 할 내용을 담지 않고, 알려야 할 사건을 은폐하는 '쓰레기 기자(언론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뱅뱅클럽'의 사진기자들은 자기의 주관을 개입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사진을 찍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지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케빈 카터에게 무턱대고 질문을 들이대던 그 기자들에게 과연 자기 스스로 기자로서의 윤리성에 자신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결국,
실제로 케빈 카터는 그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적어도 케빈 카터의 고뇌의 깊이가 그에게 도덕성과 윤리성을 들먹이던 기자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한 고민의 기회가 되는 내용이 담겨있긴 하지만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화법처럼 마냥 진지하고 무겁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주제를 기조로 삼아 전개된다기보다는 상업 영화가 주는 오락성을 견지하는 시각에서 펼쳐진다. 조금 진지한 시점은 이내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정서, 이를테면 네 사람의 우정과 사랑으로 전환되고, 어떠한 판단이 요구될만한 지점에서는 뱅뱅클럽이 좌충우돌 뛰어다니며 카메라로 현장을 담는 모습과 그 현장의 긴장감을 전하는 것으로 속도감 있게 바뀐다.
위와 같은 점이 영화 구성도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점으로 작용하며, 애초에 영화가 질문했던 주제를 희석화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 단점과 달리 영화는 관객을 사건의 현장 속으로 이끄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고, 그런 현장을 누비는 체험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화가 주는 사유의 근거와 영화의 오락성이 주는 재미를 모두 잡으려고 했을까?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마치 케빈 카터가 카메라에 담았던 아사 직전의 아이와 그를 노리는 독수리의 모습처럼, 영화는 '나는 이렇게 영화의 내용을 찍었으니,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고민은 각자의 몫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라면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 소녀의 죽음을 그대로 내버려뒀을까, 아니면 사진보다 소중한 소녀의 목숨을 구했을까? 사진 속의 독수리와 소녀의 관계가 초원의 사자와 영양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케빈 카터의 자살은 이미 우리에게 영화가 던진 질문에 답을 주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The Bang Bang Club
감독: 스티븐 실버(Steven Silver)
* 엔딩 크레딧에 담긴 실재 인물의 사진을 보면서 영화 속의 배우들과 매우 흡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그렉 역의 라이언 필립은 그다지 닮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화에 담긴 그 사진의 실제 사진을 보여준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 아래의 사진은 케빈 카터가 찍은 실제 사진이다. 사진 한 장의 힘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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