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용 말을 사러 나간 소작농 테드(피터 뮬란, Peter Mullan)는 괜한 객기를 부리며 비싼 값을 주고 경주용 말을 사가지고 온다.
돌투성이인 땅을 일구고 쟁기를 끌어야 할 말이 필요한 집안에 그런 말을 끌고 오는 테드를 보며 아내 로즈(에밀리 왓슨, Emily Watson)는 당장 물러오라고 화를 내는데, 첫눈에 그 말에 반한 아들 알버트(제레미 어바인, Jeremy Irvine)는 자기가 그 말을 훈련시켜서 꼭 일하도록 할 테니까 맡겨달라며 돌려보내지 말라고 애원한다.
이른 시일 안에 농장 임대료를 갚지 않으면 집마저 잃고 쫓겨나는 처지에 놓인 알버트네 가족은 궁지에 몰리게 되지만, 알버트로부터 '조이'라는 이름을 얻은 말과 알버트가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하며 밭을 성공적으로 일구는 데 성공하게 된다.
알버트네 가족과 조이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 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자, 테드는 징집을 위해 마을에 온 군대에 조이를 팔아 살림 자금을 마련하려는 결정을 하게 되고, 알버트의 슬픔 속에 조이는 전장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는 거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말 조이인 셈이다.
튼튼한 근육과 총기 어린 눈빛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늘어놓는 존재인 조이.
영화는 조이가 영국군의 장교가 타는 말의 위치로 시작해서 독일과 프랑스 등지를 오가며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담고 있다.
조이의 여정을 통해서 전쟁의 무상함과 사랑,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려는 동화 같은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의 화법으로 그려진 영화는 그런 탓에 관객에게 고전적인 감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와 극의 구성에 기교를 부리는 표현보다는 잔잔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나란히 나열되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폭넓은 층에 무리 없이 다가서는 친숙함은 있지만 동시에 극적 고조감의 결여로 다소 몰입감은 부족할 수도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광고나 홍보의 부풀림을 고려하더라도 커다란 감동이나 영화적인 측면에서의 흥미진진하다거나 특별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의 시점을 통해 바라본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점은 대중적으로 다가설 만하다고 본다.
전쟁과 가족, 인간애와 사랑, 희망과 화해 등의 내용을 담은 이 영화에서 주목하게 된 부분은 알버트에게 엄마 로즈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훈장에 관한 사연에 관한 이야기의 내용이다.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동료를 구하면서 다리를 다치게 되어 지금까지 쩔뚝이지만 자신의 큰 공을 다른 사람에게 내세우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가 정말 가치 있고 용감하며 훌륭한 사람의 태도라고 알버트에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일러주는 어머니의 모습.
그것은 앞으로 성장하며 또한 맞닥뜨리게 될 알버트의 삶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성장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일 게다.
한편, 농장에서 밭을 일구는 말의 위치에서 시작해서 영국군 장교의 군마를 거쳐서 독일군의 운송용 말로 전락했다가 에밀리(셀린 버켄스, Celine Buckens)라는 소녀의 친구 같은 존재로 자리하지만, 결국 독일군에게 다시 끌려가게 되는 과정을 조이는 겪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 피비린내 나는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고, 전쟁이 지니고 있는 무자비함과 광기가 배어있음을 영화는 담고 있는데, 영화의 초반의 느낌에서 전해지는 사람과 말의 교감이 주는 부분의 무게보다는 감독이 전쟁이라는 주제에 좀 더 힘을 주어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의 이야기가 가장 높은 극적 긴장감으로 자리 잡는 부분은 아마도 조이가 온몸에 철조망을 휘감은 채로 쓰러지는 장면일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이라면 저절로 그 안타까운 모습에 눈물을 흘릴만한 장면일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서로 대치하고 있는 양쪽 군대는 마치 일시적인 평화협정을 한 것 마냥 철조망에 찢기고 긁혀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조이를 구하는 것에 힘을 합치게 되는데, 아마도 몇 개의 영화가 생각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그런 장면이다.
군마로서 전장에 이끌려간 조이와 그런 조이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금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 또한 전장으로 향한 알버트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에 절정으로 치달으며, 매우 착한 결말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이거나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철조망에 휘감긴 채로 피를 흘리는 모습에서 종교적인 감독의 성향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피 흘리며 쓰러지는 존재가 어떤 존재와 맞닿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알버트와 조이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되고 붉게 물든 노을진 하늘 아래로 언덕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마무리되는데 그 장면은 마치 채색을 한 그림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그려진다.
애초부터 그러한 결말을 예상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처럼 관객의 기대와 감독의 의도가 적절하게 조화되는 결말이면서도 무엇인가 영화가 그렇게 평화롭게 자리잡으며 끝이 나는 것이 썩 가슴에 깊은 파동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에 하나의 획으로 이어지는 일관성이 적고, 그런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과 조이의 만남에서 어떠한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보니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점성이 묽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이가 시간의 차를 두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이라는 게, 반드시 조이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조이의 처지를 동정해서 구해주겠다는 차원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이가 주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런 차원도 아니다.
판타지같은 동화로 받아들이고자 마음먹고 본다면 따뜻한 결말의 동화일 수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조이라는 말의 시선에 담기는 수 년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구조가 과연 의도했던 만큼의 영화적 효과를 얻었는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국적과 나이와 성별의 차이 없이 조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보편적인 정서의 이해에 무리가 없다.
그것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밋밋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를 평가하면서 고전 영화의 화법으로 또한 고전 영화의 표현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스필버그의 영화라는 것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워 호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식 동화적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 우정으로 봐도 무방한 이야기이자, 조이의 상징적 의미로 전쟁의 이면을 말하는 영화로 보아도 무리가 없으며,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화해와 평화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영화.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1세기 전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모두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제 어떠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해도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감독임이 틀림없기 때문에 기대의 높이를 일정하게 조정한다면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언제나 반가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War Horse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영화의 원작은 1982년에 출간된 소설이고, 그 작품은 2007년에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졌었다고 한다.
** 영국의 기병대가 독일군을 기습하는 장면의 박진감과 공방 끝에 부감 숏으로 잡힌 장면 등 전장의 현장을 재현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능력은 확실히 자기만의 색깔도 있고 뛰어난 화면으로 구성하는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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