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군가와 만나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며 친밀한 관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닐 게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되기 일쑤이고, 그러한 만남보다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일은 그 우연의 무게만을 생각한다면 쉽게 포기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만나서 좋은 관계에는 우연이 개입하는 게 아니라,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는, 교집합의 부분이 극히 적은 두 사람 사이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듯이 지내는 제인(드리 헤밍웨이, Dree Hemingway)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온종일 집에서 마약에 찌든 채로 비디오 게임이나 하는 친구 멜리사(스텔라 매브, Stella Maeve)와 매니저 일을 하는 마이키(제임스 랜슨, James Ransone) 커플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제인과 멜리사는 포르노 배우인데 아직 딱히 그 방면에서 이름을 얻지 못한 풋내기이다. 영화는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잘 사네, 못 사네 하는 가치 판단을 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은 저렇게 산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깬 제인은 휑한 방안을 꾸미려고 자기 집 앞마당에서 중고 물품을 파는 'Yard Sale' 집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팔순의 할머니 세이디(베세드카 존슨, Besedka Johnson)네서 꽃병처럼 생긴 보온병을 사는데, 집에 돌아와 꽃을 담으려고 하다가 그 안에서 1만 달러나 되는 돈뭉치를 발견한다. 제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돈을 챙겨 들고 기분 좋게 쇼핑을 하지만, 이내 마음에 걸려 보온병을 들고 세이디를 찾아가는데, 세이디는 환불하러 온 줄 알고 말도 못 붙이게 하며 제인을 문전박대한다. 제인은 고민 끝에 멜리사에게 마치 어디서 들은 것처럼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시원찮은 대답에 고민은 계속되고, 그 후로 무작정 세이디를 찾아간다. 제인은 차로 세이디가 장 봐주는 걸 돕고, 빙고 게임을 하는 곳에도 가지만, 무뚝뚝하고 의심 많은 세이디에게 오해를 받아 최루액 세례를 받고 경찰에 신고되는 수모를 당한다. 과연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게 될까?
비슷한 구석도 하나 없는 20대의 아가씨 제인과 80대의 할머니 세이디, 영화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지만 어떻게 인생을 헤쳐나가야 할지 잘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 삶을 소비하듯이 사는 제인과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세상 풍파의 흔적을 고스란히 자기 안에 새긴 세이디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왜?'가 아닌 '어떻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제인의 삶과 세이디의 삶을 보며 '저들은 왜 저렇게 살까?' 하는 문제보다 '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지점으로 관객을 이끈다는 얘기다.
제인은 유골함으로 오인했던 보온병을 꽃병으로 쓰려고 했다. 그 이유로 제인은 세이디라는 전혀 닿을 이유도 인연도 없는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에 '왜 너를 만났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너와 만나갈 것인지!?'에 관한 의미를 담은 영화 '스타렛', 드러난 허물을 감수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속 안에만 감추었던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꺼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위해 상대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Starlet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
* 제인 역의 드리 헤밍웨이는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증손녀다. 한편, 안타깝게도 세이디 역의 베세드카 존슨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연기자로서의 꿈을 이뤘지만, 만 88세를 앞둔 2013년 4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곧 이 영화는 그의 데뷔 작품이자 유작이 되었다.
** 시종일관 영화에 흐르는 음악은 덴마크 출신의 'Manua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Jonas Munk'의 'Keeps Coming Back'이라는 곡이다. 귀에 확 들어와서 찾아봤더니, 감성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 영화 덕에 좋은 음악을 소개받아서 기분이 좋다.
*** 제인이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스타렛, 치와와인데 참 귀엽고도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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