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평생 물어봐야 될 것 같애. 천지는 왜 그랬을까?"
착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생각해보면 어디 착한 사람이 바보일 수가 있겠는가. 영악한 사람이 영특한 사람으로 둔갑해버리는 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어떻게든 묵묵히 참고 견디며 버텨보려는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9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로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힘든 위치에 있지만, 푼수처럼 보일 만큼 밝고 씩씩한 엄마 현숙(김희애)은 두 딸 만지(고아성)와 천지(김향기)를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쌀쌀맞고 냉정한 성격의 만지와 다정하고 착한 성격의 천지는 비록 서로 살갑게 구는 자매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여느 자매 사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고, 그런 자매를 키우며 현숙은 큰 걱정 없이 지금껏 그래 왔듯이 고되지만 열심히 살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천지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천지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둘만 남은 현숙과 만지 모녀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지만, 현숙은 어떻게든 다시 힘을 내서 세 사람 몫의 삶을 둘이 이어가자고 만지를 격려한다. 그렇지만 만지는 도대체 천지가 왜 갑자기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천지의 주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천지와 가장 친했다던 화연(김유정)과 얽힌 이야기에 의문을 갖고 조금씩 그 실마리를 뒤쫓는다. 그리고 마침내 천지가 남긴 마지막 다섯 개의 메시지 존재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영화 속의 세상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집주인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현숙의 가족을 '불길하다'는 이유로 내쫓고, 어른들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천지 또래의 아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서로 가해자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가해자로 내몰린 화연은 자기 잘못을 거짓말로 덮으며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향해 가는 동안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의혹과 거짓말이 뒤섞이는 상황이 이어지며 전개되고, 결국 조금씩 감춰졌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지. 고마워, 잘 견뎌줘서."
영화를 보며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두 자매의 이름이었다. 천지와 만지, 천지는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뜻이고, 만지는 물이 가득 찬 연못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천지, 두 눈 가득 슬픔의 눈물로 가득 찬 만지. 두 자매의 이름은 그렇게 다가왔다. 영화는 천지의 처지처럼 안타깝고 애처롭지만 따뜻하고 착하다. 그 누구도 완전히 악인화하지 않고 나름의 선에서 보듬는 태도를 보인다. 그건 곧 천지가 남기고 간 메시지처럼 미움과 증오 대신에 용서와 화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선의의 과정이 주는 울림은 상대적으로 깊지 못하다. 지나치게 의도에 짜 맞춰진 전개 과정은 이야기의 힘이 점점 빠져가며 이어진다.
현숙이 화연의 엄마(김정영)에게 소리 지르던 '용서와 사과'에 관한 단단한 메시지가 좀 더 힘을 발휘하며 전개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영화는 그런 화연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너무 쉽게 긍정적인 전망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마무리되는 탓에, 별다른 긴장감 없이 무난하고 평이한 '밝고 희망찬' 앞날을 말하는 이야기로 종결되고 만다.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치유의 결과로 얻는 희망과 긍정은 그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지를 거쳐야만 얻게 되는 게 아닐까? 화연의 엄마가 화연에게 "나는 팥쥐 엄마여도 콩쥐 편이다."라는 대사처럼 영화는 좀 더 콩쥐의 아픔을 말했어야 했다.
영화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수단인 말과 글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살상의 도구가 되어버린 세상의 이야기다. 사람이 사람과 어울리며, 실타래에서 옷을 짜듯이 한올 한올 어우러지며 세상을 엮어가지 못한다면, 이 천지는 점점 더 눈물로 가득 차 슬픔으로 넘치는 만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그 빨간 실타래 안의 메시지는 우리가 꼭 찾아서 가슴에 품어야 할 숙제다.
Elegant Lies
감독: 이한
* 천지의 친구 미라(유연미)네 집에서 미라 언니인 미란(천우희)이 만지를 초대해서 떡볶이를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서 만지가 음식을 먹다 말고 눈물을 글썽이며 집에 가겠다는 상황에서, 미란이 "만지를 마중해주고 오겠다."는 대사가 있다. 거기에서는 '마중'이 아니고 '배웅'이 맞는 표현이다. 영화에서 종종 그렇게 틀리게 쓰는 대사 때문에 극의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 세 모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놓인 책상의 책꽂이에서 시인 고은의 시집 '허공'을 봤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서 봤더니, 시구의 내용에 영화의 내용이 보였다. 누군가를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을 넘어 살점을 뜯어먹고 싶은 증오심, 자식을 잃은 애틋한 허전함, 왁자지껄했던 타인의 잔치에서 돌아와 마주하는 서러움, ......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를 통과하는 고됨 등을 말하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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