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산다고 남 눈치를 보고 살아?"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굉장히 편향적이다. TV에서는 음악 방송은 물론이고 드라마 부문에서도 10대와 20대의 어리고 젊은 여성들의 출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영화에서도 40대 이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40대 여성, 그들은 소위 '아줌마'로 불리며, 성적 매력이 한물간 여자 대접을 받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지위로 고정된 시선을 받는다. 100세 시대를 말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그들은 정말 더는 끓지 못하는 식어버린 숯 같은 존재일까?
영화 '관능의 법칙'은 40대 여성 세 명을 내세워 그들이 마음 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그들의 본능적인 면에 눈길을 주며, 그들은 아직도 멀쩡하게 여성으로서 사랑과 삶을 이어가려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연인에게는 젊은 여성보다 덜 매력적이고, 남편에게는 잠자리를 보채야만 하며, 자식에게는 연애하는 걸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아직도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중년 여성인 그들의 위치는 모든 걸 안으로 삭이고 숨기는 게 마땅한 취급을 받고 있으니, 자기감정에 솔직하게 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어쩔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대체 몇 살까지 키워야 이놈의 육아는 끝이 나는 거니?"
세 여자의 면면은 각기 다른 캐릭터인데,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구분한 면이 좀 보인다. 방송국 프로듀서인 신혜(엄정화)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사내 연애를 오래 하다가 결국 어린 후배에게 애인을 뺏기고도, 딱히 크게 화도 내지 않으며 애인을 떠나보낸다. 그러다가 외주 제작사의 막내 PD 현승(이재윤)과 하룻밤 잠자리를 가지는데, 나이 차이로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결국 관계를 이어간다.
한편 남편의 사랑을 규칙적인 섹스로 확인하려 드는 미연(문소리)은 부부 사이의 친밀도를 내면의 대화보다 성적 관계의 지속성으로 판단하려는 생각을 가졌는데, 결국 남편 재호(이성민)는 그런 미연의 태도에 질려 허름한 술집 주인 여자와 바람이 난다. 남편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코믹한 요소를 잔뜩 지닌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리 현실적이지 못한 게 흠이다.
한편 해영(조민수)은 남들과 다르게 살기보다 다시 한 번 남들처럼 결혼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습적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다. 결혼 생활에 실패한 후에 홀로 딸 수정(전혜진)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애인 성재(이경영)와 연애를 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 여자 중 가장 현실적이고 다층적인 면모의 캐릭터다. 그렇기에 그가 겪는 엄마로서의 어려움과 여자로서의 소극적인 모습, 그리고 중년 여성으로 맞닥뜨리는 힘겨운 질병과의 싸움까지 짊어지고 있다.
세 여자의 사랑, 삶. 그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확인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과적으로 영화의 감독(권칠인)이 선택한 영화의 종착점에는 세 여자의 아픈 현실 각성과 새로운 다짐보다는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고 마는 환상적 결말이 자리 잡고 있다. 40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의 사랑과 삶에 깃든 고민과 아픔을 농염한 정사 장면과 거침없는 대사로 묘사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진지한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데에 쓰인다기보다는,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만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소재 정도로 그치고 만다. 애초에 영화는 그렇게 전형적인 장르 영화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의 사랑, 부부로서 겪는 불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등이 영화에 담겨있지만, 연하남과 연애하는 신혜의 모습이나 남편의 외도 현장에서 보여주는 미연의 모습은 이제껏 수도 없이 다뤄진 TV 드라마의 통속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상투적인 모습이다. 뻔하게 풀어가는 과정과 손쉽고 비현실적인 마무리는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고 말지만,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영화가 겨냥한 목적은 현실의 문제를 대안적으로 풀어보자는 시도가 아니라, 극장 안에서 잠시나마 웃으며 보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 듯하다.
그래도 영화에 등장하는 세 여자의 모습을 통해 30대 이상의 여성들은 저기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음 직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비록 극장을 나서며 현실과의 괴리감만을 증폭시키는 역효과가 있긴 해도, 40대 중년 여성의 모습이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다 보면 조금씩 진정으로 공감하는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감독: 권칠인
* 세 배우가 '따로 또 같이' 펼치는 연기는 다소 성긴 영화의 틈을 잘 메꾼다. 엄정화는 쉽지 않은 제 나이 또래의 그야말로 관능적인 모습을, 문소리는 성인용 시트콤 드라마 주인공으로 당장 캐스팅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연기를, 그리고 조민수는 우리나라 여자 배우에게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볼 수 있는, 충분히 탄탄한 짜임새의 연기를 펼친다.
* 이경영은 최근까지 이어진 조연 캐릭터들과 사뭇 다른 부드러운 중년 남성으로 등장한다. 새로운 면모가 이채로우면서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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