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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 함께 살아간다는 그 따뜻한 위로의 힘

evol 2014. 1. 14. 15:08

 

 

"마테호른, 거기에 다시 가야 해요. 바로잡아야 할 게 있어요."

 

아내와는 사별하고, 하나 있는 아들은 독립해서 사는 터라 홀로 외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프레드(톤 카스, Ton Kas)는 이웃과 인사도 잘 나누지 않고, 마땅히 어울리는 사람도 없는 닫힌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밥 먹는 시간을 정해둔 시간에 딱딱 맞춰서 시작할 만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강박증적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외출을 하는 경우는 일요일마다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갈 때뿐이다.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프레드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관심 없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낯선 남자 테오(르네 반트 호프, Rene vant Hof)가 나타난 이후로 프레드의 삶이 조금씩 변화한다. 지능이 낮은 건지 사람의 말귀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는 그는 길을 걷다 염소를 보면 염소의 울음 흉내를 내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다. 평소의 프레드라면 그런 테오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길을 잃은 듯이 갈 곳도 없이 떠도는 테오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해준다. 어떤 마음에서 프레드가 테오를 돌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프레드는 테오를 자기 집에서 재워주고, 식탁 예절을 가르쳐주며 음식을 주며 함께 생활해나간다.

 

 

 

"신이 나를 위해 뭘 해줬나요?"

 

영화는 프레드와 테오의 예상 밖 동거 생활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일들이 자잘한 웃음을 자아내며 이어지는데, 프레드가 마테호른 산에 가기 위해 테오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시작하면서부터 동네 사람들과 프레드의 갈등이 빚어진다. 특히 문제가 된 일은 프레드가 술에 취한 밤에 테오가 프레드의 죽은 아내 옷을 입고,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 앞에 나서면서부터다.

 

사람들 눈에 프레드와 테오가 동성애자 커플로 보이게 된 것이다. 프레드가 테오를 곁에 두게 된 이유,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테오와의 생활을 중단하지 않고, 심지어 자기 집 주소에 등록하게 되는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는 게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뭔가 확실히 밖으로 꺼내놓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여러 측면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This is my life!"

 

미처 알지 못했던 테오의 사연을 접하며 프레드는 다시 한 번 잊었던 자기 안에 감춰놓았던 일과 마주한다. 그리고 프레드가 변화하는 동안 알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사연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이미 견고할 대로 견고해진, 살던 대로 살아서 도저히 변화의 여지가 남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자기 안에 가둬놓은 채로 꺼내놓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의 후련함을 보여준다. 특히 의외의 인물인 캄프스(포르히 프란선, Porgy Franssen)가 후반에 쏟아놓는 에피소드는 훈훈한 웃음을 빵 터뜨려준다.

 

언뜻 퀴어 영화로 읽힐 수도 있는 미묘한 장면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치유하는 과정과 마음에 담고 있기만 했던 감춰진 자아와 용서 등에 관한 내용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프레드가 바로잡아야 할 일에 관해 테오의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이 프레드가 왜 테오와 함께 마테호른에 가고자 하는지의 이유가 담긴 대목이니까 말이다.

 

무뚝뚝한 프레드와 뭔가 묘한 매력을 풍기는 테오, 두 아저씨가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이야기와 결말 부분을 장식하는 프레드의 아들 요한(알렉스 클라센, Alex Klaasen)이 열창하는 노래 'This is my life'가 겹쳐지며 영화가 담고자 하는 주제가 더욱 분명해진다.

 

 

 

 감독: 디데릭 에빙어(Diederik Ebbinge)

 

* 테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된 후, 프레드가 동네 정거장 부근 집에 있는 염소를 보며 염소 울음 흉내를 내는 장면은 웃음과 동시에 가슴이 찡했다. 그나저나, 프레드를 보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서 27년 동안 감독으로 있었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이 생각났다.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