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 특별한 일을 하는 거였어요."
마흔이 넘도록 딱히 특별한 곳을 가본 적도 없고, 특별한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월터(벤 스틸러, Ben Stiller)는 16년 동안 잡지사 '라이프'에서 사진 편집자 일을 하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남자다. 좋아하는 여자가 같은 직장 안에 있어서 자주 마주치면서도 그는 온라인 커플 만들기 사이트에서 호감을 표시하는 것조차 수도 없이 망설이는 새가슴이다. 그런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툭하면 빠지고 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습관이 있다. 마치 냉동인간이 된 것처럼 멍때리기에 빠져든 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온갖 상상을 다 하는데,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악당 같은 직장 상사와 초인처럼 대결을 펼치는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그런 그가 일생일대의 혁신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회사가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회사로 경영 방식을 바꾸면서 마지막 '라이프'지의 표지 사진으로 쓸 사진을 찾지 못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부터다. 아직도 필름 사진 촬영을 고집하는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 Sean Penn)이 보내온 사진을 찾지 못하면 해고될 위기에 놓인 그는 숀을 만나기 위해서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그 여정에서 월터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경험하며, 웬만한 사람들이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상황들을 겪으며 어마어마한 여행을 하게 된다.
"인생은 끊임없이 용기를 내면서 개척하는 거예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현실의 벽에 갇혀 그저 상상에서만 꿈을 펼치는 소시민 월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코미디 드라마다. 어린 시절에 스케이트보드를 무척 잘 타며 유럽 여행을 꿈꾸던 월터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성격이 소심해졌고, 꿈을 접은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어 마흔의 나이를 넘겼다. 직장을 다니게 된 후로는 집이 있는 뉴욕을 벗어난 적도 없고, 제대로 연애를 한 적도 없는 그에게는 곧 요양원에 가게 될 노년의 어머니(셜리 맥클레인, Shirley MacLaine)와 아직 철이 덜 든 여동생(캐스린 한, Kathryn Hahn)을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월터라는 캐릭터는 미국 뉴욕에 사는 직장인이지만, 그에게는 국적을 초월해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가 처한 현실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의 삼사십대 직장인에게 공감대를 형성할만하기 때문이다. 바쁘게 사느라 제대로 여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꿈꾸던 일들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고, 경제난을 극복한다는 핑계로 기업은 구조조정을 마구잡이로 단행하는 상황이 또한 그렇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보니 어쩌면 연애 앞에 소극적인 것도 그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월터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수많은 '우리'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며, 그런 점이 영화의 대중 친화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Stop Dreamin, Start Living"
영화는 보도사진 분야의 한 획을 그은 '라이프' 잡지사를 시작의 무대로 출발해서 월터의 모험담이 펼쳐지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히말라야의 풍광이 화면 가득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담겨 있다. 그렇게 영화는 월터라는 캐릭터와 월터가 누비는 여정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고, 거기에 월터가 홀로 가슴앓이를 하는 회사 동료 직원 셰릴(크리스틴 위그, Kristen Wiig)과의 사랑 구도가 더해진다. 코미디와 모험, 드라마까지 섞인 이야기의 구성은 세대를 아우르며 쉽고 친근하게 짜여 있다.
그렇지만 월터가 멍때리기 하는 것처럼 영화는 종종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는 부분이 있다. 일단 시작 부분에서 월터를 소개하는 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많다 보니, 그의 상상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흥미로움을 넘어 좀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고, 월터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 숀과의 에피소드는 숀이 너무 무게를 잡다 보니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결말 부분에서 드는 아쉬움은 월터가 그 험난한 모험의 여정에서 돌아와서 변화한 모습이 결국 각박한 현실을 수긍하고, 연애의 시작으로 마무리되는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특별한 모험담이 평범한 연애담으로 마무리 지어진다는 게 다소 아쉽고, 그런 소심하고 소극적인 결말이 결국 할리우드의 해피 엔딩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뻔한 공식을 재확인한다는 게 씁쓸하긴 해도, 인생이 결국 복잡한 게 뭐 있겠나? 하는 감독의 생각에 적극적인 동의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쩌면 월터라는 캐릭터에게 잘 어울리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선택, 그건 어쩌면 빨간 자동차와 파란 자동차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결정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선택과 결정을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그 선택과 결정을 실천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곳도, 마음 가득한 사랑도 결국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걸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감독: 벤 스틸러
*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등장하는 노래 'Maneater', 홀 앤 오츠(Hall & Oates)의 1982년 히트곡인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서 무척 반가웠다. 영화의 OST가 참 좋은 편인데, 월터가 아이슬란드의 작은 술집에 갔을 때, 실연당한 남자가 술에 취해 부르던 노래 'Don't You Want Me' - The Human League, 좋아하는 노래인데 그 장면에서 느닷없이 듣게 돼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 1981년 음악, 1965년생인 벤 스틸러의 감성이 느껴지던 대목이다.
'영화。kⓘ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이드 르윈: 꿈꾸는 자의 삶이 쉴 곳은 어디에?! (0) | 2014.02.07 |
---|---|
마테호른: 함께 살아간다는 그 따뜻한 위로의 힘 (0) | 2014.01.14 |
와일드 빌: 날건달 철부지가 벌이는 아버지가 되기 위한 투쟁 (0) | 2014.01.08 |
프라미스드 랜드: 자본은 얼마나 영악스레 사람들을 등치는가! (0) | 2014.01.07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족이란 단지 혈연이 아닌 함께한 시간으로 맺어지는 관계 (0) | 201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