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들요? 난 잘 알지도 못해요!"
이른 아침, 웬 사내가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비닐봉지 하나를 달랑 든 채로 교도소 문을 빠져나온다. 이윽고 바뀐 장면에서는 맥주를 마시고 잠든 갓 열 살 넘긴 남동생을 깨워 학교로 보내는 소년 가장 딘(윌 폴터, Will Poulter)의 분주한 아침이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내의 이름은 빌(찰리 크리드 마일스, Charlie Creed Miles), 그는 동네 양아치 생활을 하다가 자그마치 8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어린 아들 둘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스페인으로 떠나 버린 지 아홉 달이나 되었다.
집안은 마치 쓰레기장처럼 더럽고, 아이들은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열한 살 짜리 지미(새미 윌리엄스, Sammy Williams)를 돌보는 열다섯 살 소년 딘이 꾸려나가는 살림살이가 오죽하겠나. 그나마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딘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며 집을 떠나지 않고 지내던 아이들은 오히려 빌의 등장으로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동 보호소로 옮겨지는 것을 염려한다. 영화는 그렇게 날건달 철부지 빌이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8년 만에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난장판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게 계속 나쁜 짓을 하며 자라면 아빠처럼 되고 만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혼자서 동생을 돌보며 가장 노릇을 하는 딘은 아버지 빌을 보호자 명목으로 아동 보호소에서 인정받게 될 때까지 붙잡아 둘 요량으로 빌이 건달패로부터 받아온 마약을 숨겨 놓는다. 아이들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는 빌은 아이들을 남겨두고 스코틀랜드로 가고자 했지만, 마약 문제 때문에 건달패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이래저래 아이들과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된 빌은 조금씩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큰 딘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런던 올림픽을 앞둔 공사가 한창인 런던 외곽의 동네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이만 먹었지 하는 짓은 동네 양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철부지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툭하면 맥주를 마셔대는 열한 살 소년 지미까지 부자가 모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들 주변의 사람들의 면면도 아이들에게 마약 심부름을 시키는 날건달, 매춘부와 미혼모 소녀 등 도무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저기 애들 보이죠? 내가 쟤들 아빠예요!"
삭막하고 황량한 시선으로 보자면 황망하기 그지없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으로 가득 찬 동네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영화는 그런 거칠고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않으려고 마약상 패거리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에서 인간광고판 일을 하는 빌의 모습, 그런 그에게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고 돌아서는 딘의 모습에서 훈훈한 정이 느껴진다.
물론 역경에 빠진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처한 문제를 헤쳐가는 모습을 너무 희화화하며 그리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영화가 견지하고자 하는 태도는 골칫덩어리들끼리라도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살다 보면 때때로 함께 웃으며 맞이하는 시간도 있지 않겠느냐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말이 좋아 가족이지, 생판 남들만도 못한 세 부자의 좌충우돌 이야기에는 잔잔한 웃음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상처가 잔뜩 난 얼굴로 울먹이다가 다시 웃음을 되찾는 빌, 이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되기도 참 쉽지가 않다.
감독: 덱스터 플레처(Dexter Fletcher)
* 빌이 아들 딘의 생일 선물이라고 마련한 선물과 관련한 에피소드, 정말 콧구멍을 드르렁거리며 웃었다. 크릉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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