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주연인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는 자동차 정비소의 직원으로 지내며 때때로 영화의 스턴트맨으로 일하면서 또한 가끔은 범죄자들의 범행이 이뤄진 후에 안전한 도주를 위해 차를 몰아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그는 고독하고 고요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아이린(캐리 멀리건, Carey Mulligan)과 우연히 만나며 그의 삶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심장의 박동처럼 울리는 배경 음향과 무전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경찰의 교신 내용은 차 안의 라디오에서 들리는 스포츠 중계방송과 어우러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자기의 임무에 집중한다.
경찰을 따돌리며 도망가는 자동차 추격전을 많은 영화에서 봐왔지만, 이런 묘한 느낌의 전율을 안겨준 작품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게 하는데, 단순하게 속도감만을 부각하며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고 침착하게 달리고 쉬고를 반복하는 매력적인 장면이다.
그 가슴 졸이는 도주 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뒤늦게 도착한 경찰관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그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올해 열린 6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범죄와 로맨스, 액션과 누아르, 스릴러에 하드 고어 적인 요소까지 버무려져 있는 혼합적 요소의 장르 영화다.
그것도 아주 절제되어 있어서 넘치지 않고, 폭발의 시점에서도 고요함과 묵직함이 차분하게 깔리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달려야 할 때 달리고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감독의 영민한 연출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풍기는 차가움과 닮아 있다.
액션 장면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드라이버와 아이린이 서로 처음 만나는 순간, 그 공기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서부터 이후에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표현된 장면의 질감까지 감독의 연출력은 낮게 깔려서 고속 주행을 하는 중후함을 느낄 수 있다.
뜨거움과 차가움, 움직임과 멈춤을 조화롭게 다루며 침묵과 눈길로 연출하는 영화의 새롭고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낯설지 않을 만큼 종종 듣던 내용이며 단순 명료하다.
혼자서 조용히 폐쇄적으로 살던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에게 자기의 온 마음을 건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린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아이린의 남편이 출소한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아이린의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주인공은 고민도 없이 그들을 돕게 된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감독이 연출해낸 영화의 맛은 여러 장르의 매력을 한데 모아서 새로운 맛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많지 않은 대사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극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오히려 주변의 인물들은 참, 말이 많다.
1980년대 뉴 웨이브 음악은 핑크색의 영화 타이틀처럼 묘한 매력으로 영화에 녹아 있고, 주연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의 금속성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연기력은 굉장한 힘이 느껴지며, 사랑스러운 여인이자 어떤 면에서 팜므 파탈인 캐리 멀리건의 위치도 적절하다.
전갈이 그려진 점퍼와 망치를 들고 어두운 도시의 밤거리를 걷는 사람의 이미지를 담은 필름 누아르의 느낌, 참 새롭고 흥미롭다.
"오!" 하며 시작했고, "와!" 하며 몰입했고, "햐!" 하며 탄성을 내며 엔딩 크레딧을 봤다.
이런 느낌의 영화, 장르 영화의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동의할 만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런 멋진 영화임이 분명하다.
Drive
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Nicolas Winding Refn)
*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의 주인공인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란 점이 흥미롭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작품을 떠올렸을까?
** 영화에 흐르는 OST에 오랜만에 귀가 꽂힘을 느꼈다.
신디사이저가 주로 이용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나른하고 몽롱한 그 느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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