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모텔에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하면서 서로 매만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손에는 캠코더가 들려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찍으려는 것에 싫다고 말하면서도 수줍게 웃으며 받아들인다.
마치 성인용 비디오의 장면처럼 시작되는 영화에는 그 캠코더에 찍힌 영상이 절반 이상 담겨 있다.
그리고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는 두 사람은 둘 다 남자다.
영화는 연애를 시작한 지 5주년을 자축하기 위해서 모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그것도 동성애자 커플, 게이 커플인 영준(송삼동)과 준석(조혜훈)이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의 시간을 담고 있다.
퀴어 시네마라는 장르적인 구별법으로 영화를 대하게 되는 것이 일차적인 반응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에서도 남성 동성애자 커플의 정사 장면을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없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성애자의 눈에 동성애자의 사랑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고 모르는 것에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것은 상상과 오해의 벽을 깨고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깨질 수 있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들의 삶이란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이해'의 차원의 문제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보는 시선의 가장 큰 이유는 섹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관계가 굉장히 동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들이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는 데에서 온다고 봤다.
'REC'에서 파격적인 노출 장면, 섹스 신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동성애자들의 사랑의 몸짓이자 표현이다.
일반 관객에게 그런 모습도 사랑의 일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를 얻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었다."
감독의 영화잡지 인터뷰에서 인용한 글인데, 영화가 사회적인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영준은 준석과 정사를 나누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가기 때문이다.
영준은 부모님의 기대감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인 압박감에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떠나가는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도 딱히 어떤 말을 건네지 못하는 상황은 성적 정체성을 넘어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가장 원초적으로 교감하는 최고의 시간인 정사를 나누다가 터뜨리는 울음.
그 장면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여전히 변질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랑을 저버려야 하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연인에게는 가장 뜨겁고 아름다워야 할 시간인 정사 장면에서 보게 되는 두 사람의 절망적인 모습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고, 얼마만큼의 처절한 고민이 쌓여 있는지를 극적으로 대비시켜주고 있다.
영준과 준석의 사랑은 타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랑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준과 준석도 어쩌면 그들의 사랑이 처음부터 어떤 순서를 거치게 될는지 모르고 있진 않았을 거다.
결말이 정해진 사랑, 끝이 뻔히 보이는 사랑을 시작하며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힘들고 아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다가오는 사랑을 밀어내기란 더더욱 어렵고 아팠을 테니까.
구구절절한 말이 필요없이 흐르는 눈물과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성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이별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지난 시간의 양만큼이나 가득 묻어 있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탈색된 흑백의 기억으로 남게 될, 더는 형형색색의 찬란한 사랑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헤어짐의 시간을 담고 싶었던, 희미해질 기억이 안타까워 필름으로 기록하고 싶었던 영준의 쓸쓸한 아침이 참 서늘하게 전해져온다.
●REC
감독: 소준문
* "우리 같은 사람에게 미래가 있을까?"
참 아프게 전해지는 대사였다.
** 흑백과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이 참 좋았다.
기억의 대비라는 측면에서 또한 그들이 거친 시간에 대한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멋진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김남길이 그랬고, 이제훈이 그랬듯이 퀴어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의 성공적인 행보가 이채롭다.
그래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앞날이 은근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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