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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삶의 나무, 그 가지에는 무엇이 달려 있을까?

evol 2011. 11. 11. 19:02

 

 

영화는 성경에 있는 욥기의 두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그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은둔하는 철학자 감독의 영화는 신의 존재와 우주 만물과 인간의 삶을 거대하거나 혹은 소소한 이미지로 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반드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중심으로 해서 펼쳐지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영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고 있지는 않다.

한 가족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펼쳐지는 대신에 우주의 탄생을 의미하는 이미지로부터 지구가 생성되는 장면을 거쳐, 어떻게 생물체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 후에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기로부터 인류의 등장까지를 장중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느낌상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가 언뜻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느낌이 있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영화 중에는 보면서 이해가 되는 종류의 것이 있고 보이고 들리는 것을 느끼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있다.

나의 존재의 근원은 무엇이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나의 삶은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영화가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는 있는 것일까?

우주의 탄생과 관련한 비밀이, 인간 삶의 시작과 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서 누가 답할 것인가.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 Jessica Chastain)는 말한다.

"당신께 맡기나이다. 제 아들을 받아 주소서."

아버지(브래드 피트, Brad Pitt)는 말한다.

"그저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너무나 커서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마음,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서 누가 왜 그런 것인지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중년의 나이가 된 잭(숀 펜, Sean Penn)은 예전에 죽은 동생의 꿈을 자주 꾼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의 장면이 스크린에 펼쳐지며,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기억과 기억 속의 질문들이 그려진다.

엄격하고 냉정한 아버지의 모습,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 유년에 겪는 불안과 호기심과 슬픔이 담겨 있다.

형제간에조차 갖게 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어느새 훌쩍 시간을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자신의 삶을 관통한 세월.

두렵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존재, 어느 날 보게 되는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아버지의 고된 모습.

나뭇잎은 뿌리로부터 자기가 자라났음을 어쩌면 나무로부터 떨어질 때가 가까워져야만 깨닫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 깨달음이, 깨달음의 과정이 우주 만물의 기원으로부터 인류의 탄생과 닮아있다는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일까?

너무나도 영화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부유하는 카메라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수많은 이미지에 담긴 은유와 비유는 구태여 설명과 해설로 말하지 않아도 무엇인가 커다란 바람이 한꺼번에 온몸에 와서 부딪히는 꽉 찬 황홀감을 안겨준다.

'생명의 나무, 삶의 나무'에는 어떠한 구체적인 답이라는 열매가 달려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달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 그 시절 당신이 미웠습니다."

잭은 그렇게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무대였던 영화의 전당의 하늘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건물의 천정을 쳐다보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았던 대사를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잇듯이 읊조렸다.

"아빠! 그 시절 당신이 미웠습니다.

밉다고 말했다면 이제 사랑했다는 말로 바꿔 드리고 싶지만......"

 

영화는 또 그렇게 내 삶에 간섭한다.

받아들인다. 

 

 

 

 

Tree Of Life

감독: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

 

* 높은 비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머니 역으로 나온 제시카 차스테인은 새로운 발견이다.

은은한 미소를 가진 분위기가 무척이나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헬프(The Help)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다는데 기대가 된다.

 

**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이 꽤 훌륭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어린아이들의 연기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아, 세상에는 참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좋다!

 

*** 테렌스 맬릭의 영화 만들기는 대략 7, 8년에 한 편인데 내년에 개봉을 앞둔 영화가 있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는지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