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보면 영화는 북한에 살던 정림(라미란)의 남편이 남한 쪽의 물건을 들여오는 것을 밀고 당하면서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탈북하게 되고, 남편을 기다리며 남한에서 정착하여 살아가는 새터민 정림의 힘겨운 모습을 담고 있다. 국가정보원 직원은 몰래 카메라로 정림을 감시하고 있고 곧 따라오겠다던 남편에게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하고 가끔 장애인(이준혁)에게 봉사 활동도 하며 지내는 정림에게 어느 날부터 경찰(오성태)이 접근한다.
정림의 삶을 통해 보게 되는 사람들의 삶은 건조하고 차가운 한겨울의 추위에 갈라지는 메마른 손등의 상처처럼 느껴진다. 10대 여학생의 낙태, 비참한 삶을 끊기 위해 자살을 기도하는 장애인, 친절을 베풀던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 카메라는 그런 모습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싸늘한 기운을 그대로 전해준다.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온기 없는 공간인지 새삼스레 느껴지며 또한 사람들의 관계라는 게 참으로 서늘하게 여겨진다.
전규환 감독의 이른바 '타운 3부작'의 시선은 사람들이 별로 보려고 하지 않는 모습, 엄연히 실재하는 현실인데도 외면하려는 것들에 닿아 있다. 그것도 몹시 서늘하면서도 그 안에는 뜨거운 분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말이다. 가난하고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고되고 우울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이 그런 삶에 가까우면서도 도시의 화려함으로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하면서 과장되고 왜곡된 허위의식으로 자기 삶의 실체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적 설정은 우리나라의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무거운 상황이다. 북한의 평양과 남한의 서울이라는 도시에 흐르는 내재적 혹은 외형적인 폭력의 구조는 정림의 삶을 투과해서 봤을 때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 하층민들의 삶이라는 것은 '지상낙원'으로 선전하던 북한의 비참한 사회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보이는 사회적 구조는 그들의 삶을 크게 돕지 않는데, 그런 부분은 교회로 대변되는 피상적인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과연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힘을 보태고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친절함을 가장해서 욕망을 채우는 성태의 모습은 어쩌면 때때로 가해자로 서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서 서글펐다. 그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에서 정림을 강간하는 성태의 모습은 경찰이라는 그의 신분에서 더더욱 환멸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욕망을 위해 약한 사람을 짓밟고 있는 사회인지는 굳이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구차할 만큼 진부한 느낌마저 들고, 그런 욕망의 먹이사슬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구조적인 모순을 고스란히 설명하는 불쾌한 현실이기도 하다.
남편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정림이 오열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프게 그려졌다. 더 이상 희망과 기대가 없는 사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그 처절한 절규, 그 옆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스산한 소음. 과연 정림은 앞으로 그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도시는 또 얼마나 많은 정림을 잉태할 것인가.
탈북자 정림의 삶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도시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현실의 모습은 어둡고 우울하다. '모차르트 타운'을 거쳐 '애니멀 타운'을 지나 '댄스 타운'에서 보는 그 공간에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외로움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건조한 삶 때문에 한없이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도 그저 각자의 삶이 담긴 춤을 출 뿐 두 손을 마주하고 차마 안지 못하는 외로움 춤을 춘다.
전규환 감독의 '타운 시리즈'는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선 안 되는 우리들의 삶의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인식하고 있는 사회와 사람의 문제는 그런 당위성에서 마땅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전규환 감독의 영화가 앞으로도 그 힘과 의지를 계속 영화 안에 담길 바란다.
Dance Town
감독: 전규환
* '타운 3부작' 전편에 등장하는 배우 오성태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굉장하다. 전규환 감독과 배우 간의 의사소통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지가 궁금하다. 정림 역을 소화한 라미란의 경우는 최소한 조선족 배우를 섭외했을 것으로 예상했을 만큼 인물에 잘 녹아들었다. '애니멀 타운'에도 출연했던 이준혁도 참 좋았다. 보면서 참 참담한 심정으로 봤다.
** 전규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켄 로치(Kenneth Loach) 감독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번에 이 영화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까 외국의 평단에서 그를 언급하는 것을 봤다. 그처럼 전규환 감독의 영화도 앞으로 오랜 세월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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