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라고는 하지만 사실적 근거만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나중에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박경원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서 논란이 일어난 것뿐만 아니라, 친일의 냄새가 너무나 물씬 풍긴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고, 100억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해서 말도 많았다.
대작이 뭐 반드시 흥행에 성공한다는 법이 있냐만......
일제시대에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이겨내고 비행사가 되는 과정과 비행과정 가운데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을 실재와 허구가 뒤섞이며 영화는 그려냈지만, 인물 자체에 대한 감정적인 호응도 그렇고 영화 자체의 내용에 대한 몰입도
어려운 영화였다.
껄끄럽기 한이 없는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실 속에서 일본과 만주국의 친선을 위하고 황군을 위문하기 위한 비행을 시도한다는 내용 자체는 상당히 민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기반한 전기 영화도 아닌지라, 극 중에 녹아들지 못하는 인물들의 어색한 애국적 행동들은 보는 동안 마음이
참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극 중 박경원의 애인으로 나오는 한지혁이라는 캐릭터가 제일 심했다.
갑자기 무슨 항일투사가 된듯한 인물에 대한 과도한 고문 장면은 눈을 찡그리게 하고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나름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대라는 장애를 넘어 꿈을 향해 전진하는 한 여성의 삶.
개인 스스로가 가진 문제보다 사회와 시대적인 벽의 암울함을 뚫고 자신의 꿈을 위해 사람들과 사회적인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고단함, 본인이 아니고서야 그 속내를 어찌 알 수 있겠느냐만, 문제는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대중 앞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20~30년대의 대사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라든가, 아무리 신여성이라고는 해도 마치 50~60년은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캐릭터의 설정은 '시대극'으로서의 위치와 근거를 약하게 하는 부분이 되었다.
타인의 삶을 비판하기란 참 쉽다.
사회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엮어져 있는 오늘에는 그야말로 한 개인이 대중의 비판과 뾰족한 비난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청연의 주인공인 박경원의 삶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논란이 되었던 친일적인 인물인지 아닌지 쉽게 말할 수도 없었다.
영화 자체로만 보자면 나는 그를 비난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바로 이 점이 영화의 실패를 가져온 큰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외적인 문제와 별개로 영화 내에서조차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나 극의 흐름에 대한 공감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가진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CG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비행사들의 비행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고공비행을 위해 구름 위로 수직상승하는 장면이나 빗속을 뚫고 날아가는 장면들은 내가 본 한국영화 가운데에서 가장 멋진 장면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장진영의 연기는 부분적으로 작위적인 면이 보이긴 했어도 인물 묘사에 충실했다.
"조선이 너한테 해준 것도 없잖아."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은 잊혀져 가고, 친일파들은 매국행위의 대가로 엄청난 부를 차지하며 살아가는 이 왜곡된 땅.
영화는 한 인물의 삶을 드라마로 초점화시키는 과정에서 견지했어야 할 많은 것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외면했다.
적어도 저 대사는 박경원 정도의 삶을 산 사람에게 비장하게 던질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늘에는 한국도 일본도 여자도 남자도 없잖아, 그래서 하늘이 좋아."
극 중에서 박경원은 이렇게 말한다.
......
그런데 말이지, 세상을 살면서 늘 하늘에 떠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거든!
*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의 모습을 극장에서 직접 봤던 영화다.
내가 알던 사람과 꽤 닮은 탓도 있고 여러 영화에서의 모습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배우라선지 그의 죽음에 참 속상했다.
** 영화가 담을 수 있는 소재에 제한이 없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수 백회를 넘게 이어오는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독도에 대한 도발도 끊이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엄연한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라는 점을 놓고
보자면, 고이즈미 전 총리의 조부가 준 비행기 '청연'에서 일장기를 들고 환히 웃고 있는 박경원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를 영화로만
생각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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